 2025년 11월 1일 토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2025년 11월 1일 토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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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부들의 말씀 묵상
  교부들의 말씀 묵상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
완전한 복됨은 마음의 겸손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 주님께서는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마태 4,10)는 말씀으로, 야망이라는 영예를 버려야 한다는 것을 본보기로 가르치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떨리는 미음으로 받아들이는 겸손한 사람들을 선택하시리라는 것을 예언자들을 통해 알릴 때(이사 66,2 참조), 완전한 복됨은 마음의 겸손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성령을 받은 사람을 하늘 나라가 자신의 것임을 아는 사람으로 표현하십니다. … 단 한 사람에게만 속한 것은 없습니다. 다들 한 부모에게서 같은 것을 선물로 받아 함께 소유합니다. 생명으로 들어오는데 필요한 것들을 먼저 받은다음, 그것들을 사용하는 수단을 받았습니다. 
-푸아티에의 힐라리우스-
 생태 영성 영적 독서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셋째 오솔길】
돌파하여 자기 하느님을 낳기
설교 24 우리는 또 다른 그리스도들이다
당신을 밴 태와 당신께 젖을 먹인 가슴은 복됩니다!(루카 11,27). 
우리 주님이 말씀하신 둘째 주제를 살펴봅시다. “진실히 진실히 말하거니와,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을 뿐이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많은 열매”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열매를 의미합니다. 밀알이 땅에 떨어졌다고 하는데, 여기서 밀알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리고 밀알이 떨어진 땅은 무슨 뜻일까요? 나는 즐겨 밀알을 영으로 해석합니다. 흔히 영은 사람의 영혼이라고 불립니다. 그리고 밀알이 떨어진 땅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입니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열매를 풍성히 맺기 위해 지어지거나 준비된 땅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만큼 고귀한 땅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땅은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 몸소 준비하신 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이라는 이 고귀한 땅의 열매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의 영혼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뜻과 성령의 능력을 통해 고귀한 본성과 몸이 마리아의 자궁 속에서 육신이 되었고, 그리스도의 영혼이 한순간에 영원한 말씀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합일은 순식간에 이루어졌습니다. 실로 몸과 영혼이 합일하는 바로 그 순간에 그리스도가 나타났습니다. 바로 같은 순간에 그분은 자신을 참 하느넘과 참사람으로, 곧 하느님이신 하나의 그리스도로 이해했습니다.(496)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10월 4주간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10월 4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2코린 8-13장 / 1테살 1-2장
<생태 문화 주간> 음악/미술/독서 등. 생태 품앗이
 토요일 이웃 종교(생태)의 날
  토요일 이웃 종교(생태)의 날 
  이름 없는 하느님, 김경재
종교다원론과 해석학적 이론들
농부는 접촉을 통해서 더 좋은 과일을 생산한다
유동식의 ‘접목 모델' 의 종교 신학적 해석학의 특징은 과수원에서 농부가 좋은 과일을 얻기 위해 사과나무의 대목(臺木)에다가 새로운 품종을 접목시키는 ‘접순’接筍) 사이의 상호 관계성을 아날로지로 삼는다.
분명히 농부는 더 나은 유전 인가를 지닌 접순을 대목에 접목시키지만, 접순 자체가 새로운 과실을 저절로 맺게 하지는 못한다. 좋은 유전자를 꽃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는 데는 기존의 대목이 절대적 역할을 수행해 주어야 한다. 유동식은 기독교 역사를 예로 들어 ‘접목 모델' 의 해석학적 논리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서에 기록된 복음이 유대 문화의 눈을 통해 포착된 하느님의 말씀이라면, 서구 신학은 그리스 라틴 문화의 눈을 통해 포착된 복음 이해일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은 초월적인 것이지만, 그것이 구원의 작용을 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성육신'(Incarnation)의 길을 밟지 않으면 안 된다. 육신이란 문화적 역사적 제약 밑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복음은 일단 영원의 빛에 비추어서 보편적인 진리로 해석되어야 하지만, 그것이 실존적인 산 진리로 포착되기 위해서는 각자의 주체적인 눈이 필요하다. 주체적인 눈이란 구체적인 문화와 역사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눈이란 곧 그 민족의 영성을 뜻한다.(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