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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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그 여우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보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 주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루카 13,32-33)
여우같은 헤로데
주님께서는 헤로데를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그 여우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그[여우]는 자기 자리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무슨 일을 저질렀습니까? 젖먹이들을 학살했습니다. 그가 무슨 짓을 한 것입니까? 젖먹이로 태어나신 말씀 대신 죄 없는 젖먹이들을 죽였던 것입니다. 그 아기들은 입으로 주님을 고백할 수 있기도 전에 순교자의 피를 흘렸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 바친 맏물들입니다. 한 아기가 오고 많은 아기가 갔습니다. 한 아기가 우리에게 왔고 많은 아기가 하느님께 갔습니다.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시편 8,3) 완전한 찬양이 흘러나왔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셋째 오솔길】
돌파하여 자기 하느님을 낳기
설교 24 우리는 또 다른 그리스도들이다
당신을 밴 태와 당신께 젖을 먹인 가슴은 복됩니다!(루카 11,27).
아버지께서 이렇게 발설하심으로써 여러분과 나는 하느님의 참된 자녀가 됩니다. 마치 말씀이 몸소 아버지의 아들이 되었듯이 말입니다. 나는 그 이유를 이미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아버지는 이 말씀과 자신과 하느님의 본성만을 아시고, 이 말씀 속에서 만물을 아십니다. 그분이 그 말씀 속에서 인지하시는 것은 모두 그 말씀처럼 되고, 실로 똑같은 말씀이 됩니다. 아버지 하느님은 자신을 여러분에게 드러내시고 알리시면서 자신의 생명과 자신의 존재와 자신의 신성을 온전히 주십니다. 육신의 아버지는 자식에게 자신의 성품을 물려주지만 자신의 존재나 본질을 물려주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식 역시 나름의 존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식은 아버지와는 별개의 존재입니다. 이것을 이렇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아버지가 죽었다고 해서 자식이 죽는 것은 아니며, 자식이 죽었다고 해서 아버지가 죽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하나의 생명, 하나의 존재를 공유했다면, 사정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두 사람 다 똑같이 살았거나 아니면 똑같이 죽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존재는 갈라질 수 없었을 테니까요. 우리가 그들을 “남남”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495)
<금주간 성서읽기> 2코린 8-13장 / 1테살 1-2장
<생태 문화 주간> 음악/미술/독서 등. 생태 품앗이
<파티마의 성모 마리아와 목동 / 세 바르따스>
제 6장 오직 하느님만을
통고의 마리아
막이 열리다
모든 것은 하느님께
루치아는 21세에 첫 서원을 하였다. 그것은 1928년 10월 3일이었다. 호세 다 실바 주교 몸소 서원식을 주관할 약속이었으나 떠날 무렵 여의치 못한 사정이 생겼다.
그래서 주교 대리로 한 사제가 서원식을 거행하게 되었고 규정대로 질문이 시작되었다.
“딸아, 무엇을 원하느냐 ?"
“하느님과, 지성하옵신 동정 성모의 사랑을 위해 하느님께 봉사하고 인류 구원에 자신을 온전히 바치고자 이 거룩한 수도회에 입회하는 은혜를 구합니다"
‘통고의 마리아’는 이 포르투갈 신부로부터 그리운 파티마의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그녀 편에서는 수도원 안에서 지금까지 지켜 온 침묵을 어기는 일은 없었다. 동료 수녀들이나 혹은 어느 장상이 ‘통고의 마리아’의 신상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아무것도 그녀에게서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해 성탄에 그녀는 짤막한 연극의 각본을 짜서 수련자와 수녀들을 흐뭇하게 하였고 옛날 고향에서 하던 새해 노래를 불러 박수 갈채를 받았다.
나는 가난한 목장의 딸
정오의 햇살을 온몸에 입고
귀여운 양떼에 둘러싸여
하늘의 어머님께 늘 기도하네
그러나 이 하찮은 노래에서 그녀의 가슴을 흔든 추억과 감동을 느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