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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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루카 13,24)
좁은문으로 들어가기
만유의 재판관께 이렇게 말하는 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자, 이들이 누구입니까?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기리는 거룩한 잔치를 거행합니다. 교회에 자주 드나들며 복음의 가르침을 듣기도 하지요. 그러나 성경의 진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힘겹게 몇 가지 덕행을 실천하기도 하지만 그 마음속에 영적 열매가 하나도 맺혀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를 갈며 비통하게 울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모른다고 하실 테니까요. 그분은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고 하셨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셋째 오솔길】
돌파하여 자기 하느님을 낳기
설교 24 우리는 또 다른 그리스도들이다
당신을 밴 태와 당신께 젖을 먹인 가슴은 복됩니다!(루카 11,27).
이쩨 나는 첫째 성서 구절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히려 하느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들이야말로 복됩니다."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는 말씀 이외에 아무것도 듣지 않으시며, 오로지 말씀만을 아시며, 말씀 외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오로지 말씀만을 낳으십니다. 이 말씀 안에서 하늘 아버지는 자신의 말씀을 알아들으시고, 자신을 낳으시고, 자신의 본질 속에서 자신을 속속들이 아십니다. 그분은 말씀을 아시되, 각 사람 안에서 똑같은 본성을 띠는 것으로 아십니다. 그분이 말씀하시는 방식을 주의 깊게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본성의 풍성한 열매를 아실 뿐 아니라 영원한 말씀 속에서 그것을 드러내십니다. 이것은 그분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어떤 힘과 욕구를 따르거나 무시하는 것처럼 그렇게 의지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와 영원한 말씀의 관계는 그런 관계가 아닙니다. 아버지는 말씀을 아들로 낳으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분은 말씀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분은 말씀을 끊임없이 낳으실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말씀은 본디부터 아버지와 한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그 뿌리 안에 계신 것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본성 안에도 계십니다. 아버지께서 아무 목적 없이 말씀을 발설하시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분은 말씀을 꾸밈없이 발설하시되, 말씀이 그분 자신의 본성에서 비롯되었다는 듯이 발설하지는 않으십니다. 이 말씀 속에서 아버지는 나의 영, 여러분의 영, 그 말씀을 닮은 각 사람의 영에게 발설하십니다.(494)
<금주간 성서읽기> 2코린 8-13장 / 1테살 1-2장
<생태 문화 주간> 음악/미술/독서 등. 생태 품앗이
세계 교회사, 아우구스트 프란츤
제1기: 1500~1700년
종교개혁과 가톨릭 개혁
제 3절: 마르틴 루터, 종교개혁가로의 발전
마르틴은 아버지의 의사에 따라 법률학자가 되기로 되어 있었다. 1505년 여름 다시 에르푸르트로 가던 도중 벼락이 그의 곁에 떨어지는 무서운 뇌우의 곤경에서, 즉 7월 2일에 수도원에 들어갈 맹세를 하였다. 너무 서둘러 마음의 준비가 안된 채 그는 7월 17일에 에르푸르트의 엄격한 아우구스티노 엄률 수도회에 입회 신고를 하였다. 거기서 수련을 끝내고, 1507년 4월 3일에 사제품을 받고, 에르푸르트에서 본격적인 신학공부룰 시작하였다! 거기서도 다시 빌의 엄격한 유명론적인 신학이 기초를 이루고 있었다. 후에 그는 수도원 시기 동안에 자신을 엄습한 무서운 내적인 싸움에 대하여 자주 이야기 하곤 하였다. 그의 수도회의 사부인 아우구스티노의 은총론과 예정설에 대한 몰두, 자기자신의 개인적인 죄의 체험과 오컴주의적 ·유명론적인 철두철미 주의주의적인 신관이, 그를 종교적 ·신학적인 파국의 막다른 곳으로 이끄는 데 함께 작용하였다. 예정에 대한 불안이 그를 엄습하였다. 그는 자신의 배신을 느끼고. 신으로부터 버림받고 저주받은 것으로 믿고 깊은 심적인 침울 상태에 빠졌다. 자주 되풀이된 고해성사도. 그밖의 교회의 성사적인 도움도 그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그는 성사에 대해서 본래 그의 유명론적인 기반으로 인하여 올바른 관계를 가져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다만 그의 수도회의 장상인 스타우피츠의 위로에서만 위안을 찾았다. 그는 마르틴에게, 과연 자신이 예정되었는가 아닌가를 늘 골똘히 생각하거나 숙고하지 말고, 단순히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우리를 위하여 속죄 수난을 성부에게 바친 그리스도의 상처를 관조하도록 지도하였다.(28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