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요리조리 조목조목 따져볼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첫째는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 하고 하신 점입니다.
이어지는 얘기를 볼 때 주님은 제자들을 고통스러운 길로 내몬 나쁜 스승입니다.
그런데 더 잘 생각하면 같이 가자고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물 위를 걸으신 경우처럼 제자들만 따로 보내신 것이 아니라
오늘 주님께서는 한배를 타고 가시며 하시는 말씀이고
너희와 나는 공동 운명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니 말입니다.
사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심은 같이 길을 가기 위함이고,
우리가 갈 곳까지 우리를 틀림없이 데려가시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같이 가자고 우리를 초대하시고 한배를 타심은
우리 스스로 가려고 하지 않고 갈 수도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스스로 가려 하고 잘 갈 수 있다면 굳이 같이 가자고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호수 이편에서 저편으로 가는 것은
이 세상을 떠나 하느님 나라로 건너감인데
이 여행길이 실은 싫고 매우 두렵기에 떠나려고도 하지 않고
혹 떠나더라도 끝까지 가는 것이 힘들기에 초대도 하시고 같이도 가시는 겁니다.
그런데 두 번째 문제는 주님께서 한배를 타시긴 하셨어도 주무시고 계십니다.
그렇게 풍랑이 거세고 제자들이 죽게 되었어도 주무시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믿음 시험입니까?
뒤에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신 것처럼
믿음을 시험해 보고 야단치시기 위함입니까?
사실 그런 면이 없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을 보면 아브라함의 경우처럼
하느님께서 다 해주실 것이면서 우리 믿음을 시험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외아들 이사악을 바칠 때 야훼이레 하느님께서는
제물을 다 마련해주실 거면서도 아들을 바치라 시험하셨지요.
이런 시험과 시련을 통해서 믿음을 단련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통의 한 가운데 있을 때는 하느님께서 함께 계셔도
안 계신 것 같거나 내 고통을 모른 채 주무시고 계신 것처럼
느껴져도 우리와 한배를 타고 계심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하느님께서도 우리처럼 걱정하시는가 그 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하고 묻는데 주님은 진정 걱정하지 않으실까요?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걱정하지 않으십니다.
걱정은 우리같이 믿음이 부족한 사람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다른 걱정은 하십니다.
우리 구원과 관련하여 걱정은 하십니다.
죽게 될까 봐 걱정은 하지 않아도 구원의 길에서 벗어날까 봐 걱정은 하십니다.
한배를 타고 같이 가시는데도 우리가 이탈할까 봐 걱정하시는 겁니다.
이렇게 우리 구원을 걱정하시며 한배를 타고 가시는 하느님!
늘 저희와 함께하심을 저희가 느끼게 하시고 믿게 하소서!
세상 문제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고 구원을 걱정케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