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를 하고 나서 그들에게 제비를 뽑게 하니 마티아가 뽑혀,
그가 열한 사도와 함께 사도가 되었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 공통으로 나오는 말이 ‘뽑다.’라는 말인데
사도행전에서 마티아 사도가 뽑힌 방식이 제비뽑기입니다.
기도하고 뽑기를 하였기에 망정이지 만일 그러지 않았다면
제비뽑기는 정말 경망스럽기 이를 데 없는 방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그 중요한 사도의 선출을 어떻게 제비뽑기로 선출한다는 말입니까?
사실 우리의 인간적인 감성은 투표자들이 심사숙고한 다음 기도하고 뽑아야
경망스럽지 않고 우리의 모든 관심과 정성과 사랑이 담긴 선출인 것 같지요.
그러나 어떤 방식이든 다시 말해서 제비뽑기든 투표의 방식이든 임명이든
기도하고 뽑으면 하느님께서 뽑으신 것이라고 믿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고,
그리고 우리가 진정 신앙인이라면 그런 마음과 그런 믿음으로 수락해야겠지요.
그런데 요즘 우리는 이런 믿음이 수없이 시험받습니다.
어떻게 그런 사람이 뽑혔는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으면서
이것이 과연 하느님께서 뽑으신 것인지 의심하곤 합니다.
그런데 같이 기도하고 뽑았는데도 내가 싫어하고 내가 뽑지 않은 사람이 뽑히면
내가 뽑지 않았으니 하느님께서 뽑으신 것이라고 생각하고 믿어야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이 뽑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이 바로 무신론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았으면 하느님 뜻대로 된 것이라고 믿어야 하는데
내가 원하고 내가 뽑은 사람이 뽑힐 때만 하느님이 뽑으신 것이라고 믿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자기중심의 믿음이고 하느님 뜻을 따르겠다는 자세가 아니라
내 뜻을 오히려 하느님께서 들어주셔야 한다는 자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운 것이라는 말씀도
우리는 이런 뜻에서 이해할 필요도 있습니다.
사도들의 선출이나 교황님의 선출만 하느님께서 뽑으신 것이 아니라
교회 안의 모든 선출은 사제가 임명한 것이든 우리가 선출한 것이든
그 방식을 통해 하느님께서 친히 뽑으신 것이라고 믿어야 올바른 믿음의 자세지요.
그러나저러나 전에도 같은 성찰을 여러 번 했듯이 마티아를 세례명으로
가진 제가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할지 저는 오늘도 성찰해봅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뽑으셨다고 믿는 사람의 자세는
우선 대단한 영광이요 은총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처럼 주님의 종으로 뽑힌 것만도 영광과 은총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오늘 주님께서 당신의 친구로 뽑아주신다시니 이 얼마나 큰 영광이요 은총인지!
다음으로 이런 영광과 은총을 받기에 부족하다고 우리는 물론 겸손해야 합니다.
저는 서품받고 첫 미사 때 이런 강론을 했습니다.
앞으로의 사제생활은 예수님을 등에 태운 어린 나귀의 삶이어야 한다고.
예루살렘 입성 때 자기 등에 타신 주님 때문에 사람들이 환호하는 것을
자기를 보고 환호하는 거로 나귀가 만약 우쭐하면 정말 꼴불견이겠지요?
마지막으로 주님께는 나귀지만 사람들에게는 목자로 뽑혔으니
남은 생을 사랑과 열정으로 주님 양들을 돌봐야겠지요.
주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처럼 제게도
이렇게 물으시고 당신 양들을 맡기실 것입니다.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