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오늘 김대건 신부님의 축일에 전례는 독서로 로마서를 읽는데
김대건 신부님은 이 말씀대로 사신 분이라는 말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환난은 인내를 자아낸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가? 모두에게 그런가?
사실 인내가 생기기 전에 환난으로 무너지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인내력이 생기는 것은 환난이 닥쳤을 때 그 환난을 견디고 버텨야 하고,
견디고 버티는 그만큼 인내력이 생기는 것인데
환난을 감수하고 감당하려는 자발적인 마음이 없을 때
오래 견디거나 버티지 못하고 인내가 생기기 전에 금세 무너지곤 하지요.
그런데 환난을 감수하고 감당하려는 자발적인 마음은 어떻게 생깁니까?
사랑 이외에는 없습니다.
우리의 실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지 않은 사람은
환난이 닥칠 때 쉽게 무너지고 잘 일어나지 못합니다.
반대로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은 고통을 잘 견딥니다.
사랑을 많이 받아 자존감이 높고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닥친 환난이나 닥칠 환난에 굴하지 않고 자기를 지켜내고,
그러는 과정에서 인내심과 함께 인내력도 생겨나고,
단련을 통해서 사람이 단단해지며 어려움 중에도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어저께 저는 저의 고향 선배 신부님의 서품 금 경축에 다녀왔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을 주보로 모셨기에 축일을 기해 금 경축을 한 것인데
신부님은 교구 사제로서 일반적인 본당 사목도 하셨지만
거기에 안주하시지 않고 파푸아뉴기니로 선교도 다녀오셨습니다.
그 바람에 선교지에서 말라리아를 앓게 되어 청력을 잃게 되었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본당 사목 중 사제관에 어르신을 모시고 살던 것이 계기가 되어
아홉 개의 노인 복지시설을 거느리는 재단을 세우셨지요.
그러는 가운데 신부님이 겪은 고난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이 많았는데
이런 모든 어려움을 다 이겨내게 한 열정과 희망이
다 사랑에서 비롯된 것임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사랑은 Amor가 아니라 Passio입니다.
여러 번 말씀드렸고 여러분도 잘 아시듯
Passio는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Passio Christi(그리스도의 수난)에서 잘 드러나는,
고통과 환난을 무릅쓰는 사랑이요 고통과 환난을 감수하고 감당하는 열정입니다.
오늘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로 축일을 지내는 김대건 신부님이
26년 짧은 생애 동안 이 Passio Christi를 충실히 산 분이시고,
저의 선배 신부님은 김대건 신부님의 모범을 충실히 따른 분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후예인 저도 저의 선배 신부님의 자극을 받아
김대건 신부님의 삶을 살기로 다시 한번 도전하는 오늘이고,
저도 저의 선배 신부님처럼 후배들에게 자극이 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희망도 하고 결심도 하는 오늘 저입니다.
기도해 주세요.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