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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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마태 11,12)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요한 때”나 예수님의 때는 시간과 관련지어서가 아니라, 성경 말씀을 듣는 이의 영혼의 상태에 관한 말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예수님께서 활동하신 때를 뜻하는 말이 분명합니다. 시편은 그때를 이렇게 표현합니다.“그의 시대에 정의가, 큰 평화가 꽃피게 하소서. 저 달이 다할 그때까지"(시편 72,7), 앞서 가르침을 받은 이가 예수님의 말씀이 시작될 때 와서. 울통불퉁하고 가파른 곳에 길을 내듯 기초적인 사실을 알립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 나라를 차지하려고 해서 히늘 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비아아제타이’는 ‘폭력을 가한다’는 능동적 의미가 아니라 ‘폭력을 당한다’는 수동적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나 완전한 ‘말씀’께서 율법과 예언자라는 교사와 관리인들 아래에서 자유를 기다리던 이를 따뜻이 맞아들여 그에게 아버지의 상속을 거저 주신다면 "모든 예언서와 율법은 요한에 이르기까지 예언하였다”는 말은 참으로 옳습니다.
-오리게네스-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셋째 오솔길】
돌파하여 자기 하느님을 낳기
설교 25 우리의 신성
이것을 위해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다
사도들과 함께 계실 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마라고 하셨다(사도 1,4),
우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이 성령은 누구인가? 이 성령은 자석처럼 행동한다. 마치 자석이 쇳조각을 끌어당기듯이,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그 이상으로, 영은 결코 만족할 줄을 모른다. 영은 소용돌이와 원천 속으로 더 깊이 돌진하여 거기에서 자신의 근원을 잡는다. 이와 같이 영은 우리를 우리의 중심 속으로 더 깊이 데려간다. 우리의 중심은 소용돌이치는 신적 깊이다. 우리 영이 성령을 만날 때. 돌파 - 일치 – 가 일어난다. 우리는 이것을 둘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하나만을 위한 자리인 빈 들에 견줄 수 있다. 하느님은 이 영올 빈 들과 자기만의 독거로 데려간다. 그곳은 하느님이 순수한 하나가 되고 자기 속에서만 분출하는 곳이다. 빈 들은 곧 하느님이다. 하느님이라고 불리는 빈 들에서 이 합일이 일어날 때, 인간의 영은 더 이상 이유를 가지지 않는다.
이유 없이 사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하느님의 아들로 태어났음을 알리는 또 다른 표지다. 이유 없이 사는 것이야말로 신성이 하는 일이자, 우리의 신성이 떠맡는 일이며, 우리의 신성을 알리는 표지다.(523)
<금주간 성서읽기> 2티모 1-4장 / 티토 1-3장
<생태 돌봄 주간> 자신. 이웃. 동물과 식물. 자연환경
<파티마의 성모 마리아와 목동 / 세 바르따스>
제 6장 오직 하느님만을
통고의 마리아
영원히
종신 서원식이 끝난 후 ‘통고의 마리아 수녀’는 뽄뜨베드라에 있는 성모 칠고 학원 기숙사에 보조 수녀로서 파견되었다. 그곳에는 그 옛날 빌라르의 고아원에서 조금도 호의 없이 그녀를 맞았던 원장이 있었다.
이 원장은 지금 교회가 파티마의 발현을 인정하고 있기에 옛날 만큼의 반감은 품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의혹을 물리치기에는 극기가 필요했다. 다행히 이해심이 많고 폭넓고 선량한 원장이었기에 루치아에 대해서는 신중하고 재치 있게 다루었다
교만에 떨어질까 염려하며 루치아 앞에서는 파티마에 관한 말은 일체 입에 올리지 않았다. 때때로 너무 엄한 말을 하기도 하고 어려운 일을 명하기도 했다. 루치아는 어느 때나 유쾌하게 감자를 고르고 바닥을 닦고 침실 정리와 가구 정돈에 이르기까지 아주 충실히 다 해 나갔다.
어느 날 늦은 시간 원장은 거름치는 일을 명하였다. 루치아는 명령내린 대로 정확하게 조심스럽게 그 일을 다했다. 그 일은 과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알쥬스트웰에서 양우리의 청소도 돕지 않았던가.
일을 다 마친 그녀는 원장에게 보고하러 갔다. 그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좀 당황한 모습이었고 경탄과 감사의 정이 넘치고 있었다. 이상하게 생각하여 원장은 물었다.
“왜 그래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젊은 수녀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얼굴을 붉히면서 당황한 태도로 주저하면서 겨우 들릴락말락하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성모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아직도 그 따위를 ...... 좀더 잘 생각하고 말하세요. 그런 일은 집어치우고 일하러 가세요"
루치아는 아무 말 없이 순종의 뜻을 표한 후 고운 미소를 지으면서 일하러 나갔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장상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그녀는 몰랐다. 왜냐하면 원장은 그때 성모님께서 얼마나 큰 동정심으로 충실한 루치아를 보고 계신가를 확실하게 깨달았던 것이다.
빌라르의 고아원 시대부터 장구한 세월에 거쳐 파티마의 목격자와 함께 살아 온 원장은 루치아에 대한 인상을 의미심장한 말로 요약했다.
“루치아는 평범 중의 비범이다"
이 말의 뜻은 외견상 다른 수녀와는 조금도 다를 바 없으나 그녀는 다른 데서 찾아볼 수 없는 순결과 숭고한 지향으로 행동하며 헤아릴 길 없이 깊고 우아한 내적 생활을 즐기고 있다는 뜻이다.(2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