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당신은 유일하십니다.
당신밖에 없는 외로운 저를 도우소서.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을 요약하면, ‘에스테르처럼 청하라!
그러면 하느님께서 반드시 들어주실 것이다.’일 것입니다.
오늘 에스테르는 자기 동족과 함께 절체절명의 상태에 있고,
이런 상태에서 그녀는 지독한 외로움 가운데 있습니다.
외로움이란 아무도 또 아무것도 없는 지독한 가난입니다.
그 절체절명의 상태에서
스스로 빠져나갈 힘이 없고,
빠져나갈 방법도 없고,
사람이 많아도 구해줄 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이런 외로움을 생각할 때
지금의 저로서는 그리고 나이를 먹을수록
다른 외로움이 아니라 죽을 때의 외로움, 더 정확히 얘기하면,
죽기 전 마지막 몇 년 또는 몇 달을 자주 생각하게 됩니다.
에스테르는 죽게 된 처지에서 살길을 찾으며 그러나 아무도 없다고 하는데
저는 살길이 아니라 외로움 가운데서 어떻게 잘 죽을 수 있는지를 찾는 것입니다.
주변을 보고 티브이를 보면서 잘 죽어가는 것이
그렇게 외로운 것이고 그렇게 힘든 것임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노년을 사는 것이 한 생을 잘 사는 것입니까?
어떻게 하면 노년의 외로움을 잘 살 수 있을까요?
지금 저의 생각으로는 우선 외로움을 직면하는 것입니다.
사실 외로움은 거의 모든 사람이 즉각 거부 또는 외면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혼자 있으면서도 외로움을 직면하지 않고 거부하고 외면합니다.
예를 들어 노인 혼자 사는 집에 가면 보지 않으면서 티브이를 켜 놓고,
잠잘 때조차도 외로운 것이 싫어 켜놓고 잠을 자는 것을 볼 수 있지요.
나이 먹은 분들이 유튜브에 더 빠지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아무것도 없는 외로움에 하느님께서 안 계신다면
직면할 이유도 없고 필요도 없으며 직면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외로움을 직면하는 것은 하느님을 직면하는 것입니다.
외로움을 직면하는 것은 하느님을 직면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그래서 요즘 훈련 비슷한 것을 합니다.
컴컴하고 아무것도 없고 아무도 없는 저 우주 어디에
저 혼자 있는 걸 상상하며 거기서 하느님을 찾습니다.
절실하고 그래서 꼭 계셔야만 합니다.
여기서는 하느님이 안 계시면 결단코 안 되고 계셔야지만 되지요.
오늘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외로움은 하느님을 간절히 찾게 합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