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작가 : 미상
소재지 : 미상
예수 성심 공경은 가톨릭 교회가 지닌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감동적인 신심 행위의 하나이다.예수 성심 공경은 하느님의 가없는 사랑과 열렬한 사랑의 가장 감동적인 학습장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교회는 성령 강림 대축일 후 첫 금요일에 이 축일을 경축하면서 사제들의 성화의 날로 정해서 사제직의 본질은 어떤 예식의 주관이나 법의 집행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모습을 보이는 사람임을 강조하기 위해 이 신심은 1673년 프랑스에서 말가리다 알라콕의 환시 체험에 의해 더 넓게 보급되었다.
이 장면은 보통 불타는 심장을 손으로 가리키거나 아니면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가시관을쓰신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는데, 이것은 하느님으로서 인간의 사랑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다.
예수 성심 공경은 10세기 까지 교회 안에 없었다. 그러다가 12세기에 그리스도의 인성을 강조하신 끌레르보의 베르나르디노 성인과 이어서 성 프란치스코에 의해 그리스도 인성에 대한 강조는 자연스럽게 인간에 대한 그분의 사랑으로 이어졌고, 십자군들이 예루살렘 성지에서 전투를 하는 과정에 역시 주님이 사신 그곳에서 인간을 향한 주님의 깊은 사랑을 확인하게 되면서 예수 성심 공경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동안의 교회는 자신의 권위 강조에 도움이 되는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일방적 강조를 하게 되었고 이 결과 십자가에서 비참하고 무능한 모습으로 달린 인간 예수의 모습은 본의 아니게 그리 신경을 쓰지 않는 분야가 되어있었다.
그러다가 십자군 전쟁으로 성지를 찾은 많은 크리스챤들은 예수님 삶의 터전이었던 성지에서 그분이 보이신 인간적 사랑에 눈뜨게 되었고, 이것이 그동안 교회가 강조하던 신의로서 예수님과 다른 새로움으로 닥아오면서 예수님이 인간으로서 인간이신 사람들에게 보이신 사랑의 표현에 대해 신경을 쓰게 되었다.
이것이 13세기에서 16세기 까지 여기에 관심이 있는 개인들과 수도회에 의해 다양한 방법으로 확산되기 시작했으며 어떤 신학적인 차원 이전 인간의 감성에 호소하는 면이 더 강했기에 교회 평신자들 사이에 다양한 방법으로 퍼지게 되었다.
프란치스칸들은 성 보나벤뚜라의 저서 ‘신비로운 포도나무’에서 “인간들의 구원을 위해 상처받으신 주님의 상처를 기억하지 못하는 인간은 그분의 사랑안으로 깊이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라고 하시며 예수님의 성심에 대한 공경을 강조했으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받으신 다섯 상처에 대한 공경과 같은 개인적 차원의 신심행위이지 수도회 자체로서 무엇을 강조하는 것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수도회 자체의 행사가 아니더라도 원채 이 신심이 신자들의 감성에 맞닿는 것이기에 오늘도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고통을 통해 죄많은 우리 인간들이 구원될 수 있는 은혜를 주심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예수 성심 공경에 대한 필수적인 과제로 신자들의 마음에 와닿게 되었으며 이것은 어떤 사제의 강론 보다 더 설득력 있는 자발적 신심 수업이 되었다.
성서는 그분의 옆구리가 찔리며 피와 물이 나왔다는 다음 성서 구절에서 예수님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인간의 구원을 위해 바치셨다는 가없는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군사들이 가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첫째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예수님께 가서는 이미 숨이 끊어진 것을 보고 다리를 부러뜨리는 대신,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요한 19,32-33)
18세기가 시작되면서 이 신심은 개인적인 차원이나 탁발 수도자들의 신심에서 벗어나 예수 회원들의 도움으로 폭을 키우게 되었으며 성녀 말가리다 마리아 알라콕(St. Margaret Mary Alacoque, 1647~1690)의 공이 컸다. 그러나 공통점은 예수님이 인간에게 보이신 사랑에 대한 감성적 응답 차원이 강조하는 것이었으며, 이것이 신자들에 더 없는 감동을 주게 된 것도 변치 않는 면이었다.
딱딱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교리적 전개 보다 예수님의 상본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이 감동은 더없이 순수하고 강령했기에 이 상본이 주는 영향은 작가와 무관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감동이 되었다.
예수 성심 공경은 그후 예수회의 중요한 신심으로 정착되었으며 로마의 예수회 본부 성당에 도 18세기 폼페오 바토니(Pompeo Batoni(1708-1787)의 작품으로, 이냐시오 성인의 집무실과 무덤이 있는 로마 예수성당 내 예수성심 경당에 모셔져 있다.
그러나 예수 성심 상본은 너무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졌으며 예술적 가치 표현이 아닌 신심의 표현으로 그린 것이기에 부모님의 얼굴이 미남 미녀일 필요가 없는 것처럼 그 사람이 지닌 신심의 깊이에 따라 감동을 줄 수 있기에, 본인도 제작 년도도 알려지지 않는 이 작품을 선택했다.
이 상본 앞에 바칠 수 있는 아름다운 기도가 있는데, Anima Christi(그리스도의 영혼)라는 것으로 작사자가 명확히 알려지지 않은 14세기경의 작자 미상 라틴어 기도문이다.
이 기도는 우리 가톨릭 성가 172번 등 다양한 곡조로 불리고 있으며, 예수회 창시자인 이냐시오 로욜라(Ignatius of Loyola) 성인이 즐겨 바쳐 유명해졌으나, 중요한 것은 이 상본 앞에 바칠 수 있는 너무도 적합한 기도문이기에 사랑받고 있다.
그리스도의 영혼은 저를 거룩하게 하소서.
그리스도의 육신은 저를 구하소서.
그리스도의 성혈은 저를 취하게 하소서
그리스도의 늑방의 물은 저를 씻으소서.
그리스도의 수난은 저를 격려하소서.
오! 착하신 예수님, 저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당신의 상처 속에 저를 숨겨 주소서.
저를 당신에게서 떠나지 않게 하소서.
저를 악한 원수에게서 보호하소서.
저의 임종 때에 저를 부르시고,
또 저를 당신에게로 오게 명하사,
당신 성인들과 한가지로
영원히 당신을 찬양하게 하소서. 아멘.
작가도 알려지지 않는 이 작품은 예수 성심 공경을 담고 있기에 작가와 예술성과 상관없이 고귀한 것이다. 마치 그리스도의 영혼이라는 노래가 감동적인 것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