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5주 수요일-2020
지혜로운 자인 소크라테스가 'Know yourself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하였다고 우리는 어려서부터 배웠지요.
그러나 이 말의 뜻이 무엇인지는 배운 바가 없고
다만 그의 명언이라는 것만 알고 있으면서
종종 그 뜻이 무엇일까? 저 나름대로 해석하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특히 오늘 주님 말씀과 연결시키면서
'얼마나 모르는 것이 많은 자신인지를 알라'는 말로 이해했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존재인데
오늘 주님께서 꼬집으시듯이 그것을 모르고
자신이 지혜롭다고, 슬기롭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혜롭다는 자가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지혜롭다는 자'는 실제로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지혜롭다는 자가 아니라 진정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에게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음을 알기에 무엇보다도
자신에 대해서 겸손할 것이고, 늘 배우려는 자세를 견지할 것입니다.
이미 많이 알고 있고 충분히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성장판이 닫히듯이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문이 닫혀 있지만
자신은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다고 겸손하게 생각하며
계속 배우려는 사람에게는 미지의 세계가 열려 있지요.
이것을 오늘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이 말씀에서 지혜롭다는 자에게 하느님께서 감추시는 '이것'이
바로 하느님 나라의 신비이고 미지의 세계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신비와 미지의 세계를 하느님께서 감추신다는 것이
하느님 친히 신비와 미지의 세계로 통하는 문을 잠그신다는 뜻일까요?
하느님께서 지혜롭다는 자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에게는
드러내 보이신다고 하니 말마디만 놓고 보면 하느님 친히
문을 닫으시는 것이 분명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것이 아닐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가 아는 것만으로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신비와 미지의 세계에 대해서는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기에
더 이상 알려거나 배우려고 하지 않기에 스스로 문을 닫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롭다는 자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에게 드러내 보이신다는 말씀은 우는 아기에게 젖 준다는 말이 있듯이 더 이상 알기를 원치
않거나 더 나아가 알기를 거부하는 자에게는 하느님도 어쩔 수 없으시고
자신을 철부지처럼 모른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알려는 겸손한 사람에게는
하느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드러내 보이신다는 뜻일 것입니다.
오늘 성 보나벤투라 축일을 지내는데 성인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습니다.
성인은 지식을 교만으로 소유하려고 하지 않고
하느님 사랑의 신비를 더 깊이 그리고 더 많이 깨닫기를 원한 분이셨고,
그래서 하느님께서도 당신의 은총을 더 많이 내려주실 수 있으셨습니다.
하느님도 하실 수 있는 것이 있고 하실 수 없는 것이 있는데
지혜를 원치 않고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은총을 주실 수 없고,
원하는 사람에게 그 됫박만큼 주실 수 있으심을 묵상하는 오늘입니다.
오늘은 무슨 이유인지
빨리 어디를 가야 하기 때문인지
강론이 잘 떠오르지 않아서
한 시간 넘게 끙끙거리다 지난 강론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8일까지 강론을 올릴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 다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다녀와서 다시 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