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11,20-24
주님의 이 꾸중은
미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안타까움에서 나온 것입니다.
코라진과 벳사이다, 카파르나움은
그분의 기적을 ‘가장 많이’ 본 고을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은총을 받고도
가장 무덤덤했던 것입니다.
성 대 바실리오는
여기서 ‘은총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진리를 봅니다.
많이 받은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됩니다.
기적을 보고도 굳어 있는 마음은,
기적을 보지 못한 이방 도시보다 더 무겁다는 것입니다.
바실리오는 경고하면서도 길을 엽니다.
그 길은 ‘회개’, 곧 마음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자루옷과 재는
절망이 아니라, 다시 돌아서는 자의 겸손입니다.
카파르나움을 향한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라는 말씀은
교만에 대한 경고입니다.
받은 것을 ‘내 것’인 양 여기며 우쭐할 때,
우리는 가장 높은 데서 가장 낮은 데로 떨어집니다.
반대로 은총을 ‘선물’로 알아
겸손히 응답할 때,
그 은총은 우리 안에서 열매를 맺습니다.
아낌 주간의 관점에서 보면
가장 슬픈 낭비는 은총의 낭비입니다.
매일 받는 사랑과 용서, 말씀과 성체를
당연하게 여겨 흘려보내는 것 ―
그것이 코라진과 벳사이다의 잘못이었습니다.
은총을 아끼는 길은
매 순간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하고
새로이 돌아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받은 은총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기적을 보고도 무덤덤한 코라진은 아닌가?
나는 받은 것을 ‘내 것’인 양 우쭐대지 않는가?
나는 매일 새로이 주님께 돌아서고 있는가?
주님,
받은 은총을 당연하게 흘려보내지 않게 하소서.
기적 앞에 무뎌진 마음을 다시 부드럽게 하시고,
숨결마다 ‘자비를 베푸소서’ 하며
새로이 당신께 돌아서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