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나는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오늘 주님께서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고 하시고,
일치가 아니라 분열을 주러 왔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지금껏 알고 있는 것과 당연히 다릅니다.
주님께서는 분명 우리가 평화롭기를 바라시고,
우리가 일치를 살아가기를 물론 바라십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빼놓고 우리끼리만 평화롭고 일치되는 삶이 아니라
하느님과도 일치하고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에 일치하는 일치를 바라십니다.
여기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일치하지 않는 일치는 신앙인에게는 일치가 아닙니다.
같은 맥락에서 주님을 따르지 않는 일치는 칼같이 끊어야 하고,
그래서 주님께서는 칼을 주러 왔다 하십니다.
사실 칼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끊어버리는 기능과 찌르는 기능입니다.
찌르는 칼은 죽일 때 쓰는 것이고
당연히 이 칼은 주님께서 주시는 칼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칼은 끊어버리라는 칼입니다.
욕심을 끊어버리는 것부터 온갖 인연을 끊어버리는 것까지,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에 어긋나는 것은 무엇이든 다 끊어버리는 칼입니다.
프란치스코도 그래서 아버지를 끊어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시다시피 프란치스코는 주님의 가르침 대로 가진 걸 다 나눠주려고 했고
아버지는 그것을 반대하여 그에게서 상속권을 뺏으려고 재판을 걸었습니다.
그때 주교님 앞에서 프란치스코가 속옷까지 다 벗어 아버지에게 돌려주며
이제부터 자기는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자유롭게 부를 수 있게 되었다고
선언하였고 그는 그렇게 아버지와의 관계를 칼같이 끊어버립니다.
요즘 아들의 살인 범죄를 조금이나마 줄이려고 한 경찰 아버지와
경찰들의 조직적인 조작 문제로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너무나도 잘못된 것이고 잘못한 것이지만
자기가 뒤집어쓰면서 자식에게 최악은 면하게 하려고 한
아비의 사랑과 희생은 제가 보기에 참으로 눈물겹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강하고 질긴 것이 부모 자식 간 사랑이기에
칼로 끊어야 하고 칼처럼 끊어야 하는 것이고,
이것이 자기에게도 아들에게도 더 참되고 완전한 사랑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것을 주님께 가르침 받고 있고
머리론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들 하실 텐데
그게 그 아비에게서 볼 수 있듯이 너무 힘들고 괴로운 노릇입니다.
어쨌거나 괴롭고 힘들어도 끊어야 합니다.
스스로 끊든지 그렇지 못하면 하느님께서 끊어주시든지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를 포함해서 잔정 때문에 큰 사랑을 놓치는,
그런 우를 범하지 않는 오늘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