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13,1-23
같은 농부가, 같은 씨앗을 뿌립니다.
그런데 열매는 땅에 따라 갈립니다.
씨앗이 부족해서도, 농부가 인색해서도 아닙니다.
씨앗을 받아들이는 ‘땅’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친히 풀이해 주십니다.
씨는 말씀이고, 땅은 그 말씀을 대하는 우리 마음입니다.
성 예로니모는
평생 성경을 우리말로 옮기고 풀이하는 데 바친 교부로,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에게 말씀은
스쳐 듣고 흘려보낼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이 받아 곱씹고 새겨야 할 ‘씨앗’이었습니다.
예로니모는 묻습니다.
나는 어떤 땅인가?
길가는
말씀이 들어설 틈도 없이 단단히 굳은 마음입니다.
돌밭은
처음엔 반기지만 뿌리가 얕아
작은 시련에도 곧 말라 버리는 마음입니다.
가시덤불은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우거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리는 마음입니다.
이 세 땅의 공통점은
받은 씨앗을 ‘아끼지 못하고’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아낌 주간의 관점에서 보면
좋은 땅이 된다는 것은
타고난 비옥함이 아니라,
말씀을 소중히 여겨 정성껏 가꾸는 ‘선택’입니다.
굳은 마음을 갈아엎고,
얕은 돌을 골라내며,
가시덤불 같은 걱정과 탐욕을 베어 내는 일 ―
그 꾸준한 아낌이 마음을 좋은 땅으로 바꿉니다.
주님께서는 그 결실을
백 배, 예순 배, 서른 배라 하십니다.
소중히 품은 한 알의 말씀이
이토록 넉넉한 열매가 됩니다.
아낌은 인색함이 아니라,
작은 것을 귀히 여겨 큰 열매로 키우는 사랑입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지금 어떤 땅인가?
나는 말씀을 스쳐 듣고 흘려보내지는 않는가?
내 안의 어떤 ‘가시덤불’이 말씀의 숨을 막고 있는가?
나는 받은 말씀을 소중히 아껴 뿌리내리게 하는가?
주님,
제 마음을 좋은 땅으로 일구어 주소서.
굳은 길과 얕은 돌과 우거진 가시덤불을 걷어 내시어,
당신 말씀의 씨앗을 소중히 품게 하시고,
백 배의 열매로 자라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