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10,16-23
주님께서는 사도들을 보내시며
그 길이 ‘이리떼 가운데로’ 가는 길임을 숨기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곧바로 위로를 더하십니다.
“걱정하지 마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말씀에서 두 가지를 봅니다.
먼저 ‘뱀의 슬기와 비둘기의 순박함’입니다.
슬기로우면서도 해를 끼치지 않는 것,
영리하되 악하지 않은 것 ―
그 둘이 함께 있어야 한다고 그는 말합니다.
다음은 ‘끝까지 견딤’입니다.
아우구스티노에게 끝까지 견디는 인내는
우리 의지의 힘으로 짜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끝까지 붙들어 주시는 은총의 선물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걱정 대신
우리를 붙드시는 그분께 자신을 내맡길 수 있습니다.
가장 깊은 위로는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아버지의 영이시다”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시련 앞에서 곧잘
무슨 말로 버틸까, 어떻게 견딜까 걱정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자리에 우리 혼자 던져두지 않으십니다.
우리 안에서 친히 말씀하시고 견디게 하시는
성령을 두십니다.
이리떼 가운데서도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돌봄 주간의 관점에서 보면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돌보시는 방식을 보여 줍니다.
그분은 시련을 다 없애 주시기보다,
그 한가운데에서 성령으로 우리를 붙드십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렇게,
시련을 겪는 이의 곁을 지키는 것으로 그를 돌봅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시련 앞에서 ‘무슨 말로 버틸까’ 홀로 걱정만 하지는 않는가?
나는 ‘아버지의 영’께 자신을 내맡기는가?
나는 슬기로우면서도 순박한 사람인가?
나는 견디는 이의 곁을 지켜 주는가?
주님,
이리떼 같은 세상에서도 두려워 떨지 않게 하소서.
걱정 대신 ‘아버지의 영’께 저를 내맡기게 하시고,
끝까지 견디도록 친히 붙들어 주소서.
그리고 견디는 이의 곁을 지키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