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님께서는 사도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숨을 불어넣으시며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성령을 사도들이 받아들였는지 아닌지는 복음에 나와 있지 않고,
사도행전에서는 오순절이 되었을 때 받은 것으로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도 부활 대축일 다음 50일이 되는 오늘 성령 대축일을 지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성령을 주셨어도 제자들이 바로 받은 것이 아니고
50일이 지나서야 성령을 받아들였다는 말씀인데 아마 우리도 그럴 것입니다.
주님께서 성령을 주심과 우리의 받아들임 사이가 50일인데
제 생각에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성령의 출입구인 입과 코를 여는 시간입니다.
이는 우리가 기도하지만 성령의 기도를 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도 같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시작하여 주로 주님께 달라는 기도를 하고
간혹 주님의 말씀을 듣는 기도는 해도 성령의 기도를 하지는 못했는데
드디어 말씀의 기도에서 성령의 기도를 하게 된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아오스딩 성인은 기도에 대한 정의를 두 가지로 하였습니다.
“기도란 하느님과의 대화다.”
“기도란 영혼의 호흡이다.”
하느님과의 대화인 기도는 하느님과 말씀을 주고받는 것인데
앞서 말씀드렸듯이 달라는 말로 곧 청원 기도로 기도를 시작한 우리가
조금 발전하면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말씀을 경청하기 시작하고,
더 발전하면 영혼의 호흡인 성령의 기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튼 영혼의 호흡이란 우리의 영혼이 주님의 숨 곧 성령을 숨 쉬는 것인데
이렇게 우리의 영혼이 성령을 숨 쉴 때 우리는 어떤 열매를 맺을까요?
첫째로 우리는 목숨을 유지하게 됩니다.
우리말에서 목숨은 목에 숨이 들락날락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목에 숨이 들락날락하지 않으면 목숨이 끊어지듯
우리의 영혼이 주님의 숨인 성령을 숨 쉬지 않으면 죽게 됩니다.
둘째로 우리는 용서할 수 있게 됩니다.
주님께서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 다음 바로 용서를 말씀하시는데
성령을 받으면 용서할 수 있다는 말씀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을 받아 충만하게 되면 다 용서할 수 있습니다.
전에 도무지 용서할 수 없던 것도 다 용서할 수 있게 되는데
그것은 성령께서 온갖 충만함을 주는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성령을 받으면 사랑으로 충만해지는 것은 당연하고,
사랑으로 충만할 때 용서할 수 있게 되는 것도 당연합니다.
나를 불행하게 만들었기에 원수가 되고 그런 그를 용서할 수 없었는데
성령 충만, 사랑 충만으로 행복해진 내가 이젠 용서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셋째로 우리는 평화롭게 됩니다.
사실 성령 충만으로 용서할 수 있게 된 우리가
평화롭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습니까?
용서란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원수가 되어 갈리게 했던 담을 허무는 것이기에
대화가 통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과 대화하던 성령의 입으로 이웃과 대화하게 되고,
오늘 사도행전에서 볼 수 있듯이 모든 민족이 서로 대화할 수 있게 됩니다.
이 밖에도 성령의 열매는 많지만 오늘은 이 정도로 나눔을 마치겠습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