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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2026,1,26. 독서와 복음 묵상)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루가 10,5)

이 말씀은 관계의 문을 여는 예의가 아니라 영혼의 방향을 바로 세우는 복음의 첫 자세입니다. 평화를 빈다는 것은 상대가 나를 환대해 주기를 요구하기 전에 내가 먼저 두려움을 내려놓고 비겁함의 그림자에서 한 걸음 나오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디모21,7)

 

! 이 얼마나 마음 저 깊은 곳을 울리는 진실인가요. 바람 부는 갈대숲에서 홀로 떨고 있는 어린 새처럼 때로는 우리 영혼이 두려움이라는 이름의 어둠에 갇혀 사랑해야 할 이들 앞에서도 문을 닫고 서 있을 때가 있습니다. 세상의 거친 파도가 두려워 발걸음을 멈추고, 상처받을까 염려되어 먼저 평화를 건네지 못할 때, 우리 안에 이미 심겨진 하느님의 숨결을 잊어버립니다.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라고 말하며 문을 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비겁함의 영에 이끌리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나약한 영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두려움을 몰아내는 힘의 영을 주셨습니다. 그 힘은 상대를 제압하는 폭력이 아니라, 가파른 산길을 묵묵히 오르는 순례자의 발걸음이며, 상처 입은 관계 앞에서 도망치지 않는 담대함입니다.

 

세상의 불의 앞에서 침묵하지 않되, 미움으로 맞서지 않는 용기, 그것이 하느님에게서 오는 힘입니다. 그래서 평화를 빈다는 것은 연약함의 고백이 아니라 하느님을 신뢰하는 가장 강한 선택입니다. 그리고 그 힘은 결코 홀로 서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의 영을 함께 주셨습니다. 태양이 차별 없이 모든 지붕 위에 내려앉듯, 어미 새가 자신의 몸으로 어린 새를 감싸 안 듯, 그 사랑은 우리 마음을 넓혀 타인의 삶을 품게 합니다. 그래서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라는 말은 상대를 바꾸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먼저 사랑하겠다는 침묵의 약속입니다. 상대가 그 평화를 받아들이면 그 평화가 그 위에 머무를 것이고, 거절하더라도 그 평화는 다시 나에게로 돌아옵니다. 사랑은 거절 앞에서도 상처 입지 않는 방식이며, 되돌아와도 내 안을 더 맑게 하는 하느님의 숨결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무질서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절제는 삶을 움츠리게 하는 가난이 아니라 욕망의 소음 속에서도 하느님의 목소리를 알아듣게 하는 내적 자유입니다. 그래서 평화를 빈다는 것은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지금 이 관계 안에서 하느님이 일하시도록 자리를 내어드리는 일입니다. 말을 줄이고 판단을 늦추며 내가 옳다는 확신보다 하느님의 선하심을 더 신뢰하는 태도, 그것이 절제입니다. 고요한 수도원의 작은 방처럼 우리 마음이 비워질 때, 그분의 평화는 조용히 머뭅니다. 내 곁에서 나와 함께 길을 걷는 형제자매들이여! 우리는 비겁함의 그림자에 머물도록 부름받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어떤 집에 들어가든 평화를 먼저 건네는 사람,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으로 세상의 관계를 정화하는 사람으로 부름받았습니다. 오늘 내가 들어가는 집이 가정이든 공동체든 한 사람의 상처 입은 마음이든, 그 문 앞에서 다시 이 말을 연습해봅니다.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그 평화가 머무르든 되돌아오든 나는 이미 하느님의 영 안에 있습니다.

 

어둠이 빛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빛이 없는 곳을 어둠이라 부르듯, 우리의 두려움 또한 하느님의 숨결이 잠시 잊힌 빈자리에 고이는 습기일 뿐입니다. 우리는 종종 관계의 문턱에서 비겁함이라는 낡은 외투를 걸치고 서 있습니다. 상처라는 화살을 피하기 위해 마음의 빗장을 먼저 걸어 잠그는 것은, 스스로를 안전한 곳이 아니라 고립된 무덤 속에 가두는 일임을 우리는 뒤늦게야 깨닫곤 합니다.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이 문장은 공기를 가르는 파동이기 전에, 내 안의 황폐한 광야를 가로질러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영혼의 이정표입니다. 평화를 빈다는 것은 상대의 환대를 구걸하는 약자의 몸짓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 안에 둥지 틀려던 비겁함의 영을 단호히 털어내고, 우리에게 허락된 힘의 영을 깨우는 장엄한 선언입니다. 그 힘은 누군가를 굴복시키는 칼날이 아니라, 세찬 비바람 속에서도 뿌리를 깊게 내리는 참나무의 인내이며, 절벽 끝에서도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는 담대함입니다.

 

사랑은 조건부 거래가 아니기에 거절당함으로 인해 가난해지지 않습니다. 태양이 심해의 어둠을 탓하지 않고 빛을 내어주듯, 평화를 건네는 마음은 상대의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충만한 근원으로부터 옵니다. 만약 그 평화가 갈 곳을 잃고 되돌아온다면,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내 영혼의 잔을 더욱 맑게 채우는 정화의 비가 될 것입니다. 거절된 사랑조차 내 안에서는 하느님의 숨결로 남기에, 우리는 줄수록 더 부요해지는 신비의 길 위에 서 있습니다.

 

우리의 평화는 절제의 영안에서 비로소 완성됩니다. 절제는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이 아니라, 불필요한 욕망의 소음을 걷어내고 고요한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게 하는 내적 자유의 공간입니다. 내가 옳다는 오만을 내려놓고, 감정의 파고를 다스리며, 하느님께서 일하실 수 있도록 나의 자리를 내어드리는 겸손입니다. 비워진 마음이라는 작은 방에 비로소 평화의 주인이 머무실 자리가 생겨납니다.

 

사랑하는 이여! 이제 문턱 앞에서 주저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손에 들린 것은 나약함이 아니라 세상을 치유할 가장 강력한 무기인 평화입니다. 오늘 당신이 마주할 모든 문 앞에서, 가정이든, 일터든, 혹은 누군가의 시린 가슴이든, 먼저 당신 안의 두려움을 걷어내고 그 빛나는 진실을 선포하십시오.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당신이 이 말을 내뱉는 순간, 비겁함의 그림자는 걷히고 당신은 이미 하느님의 영광 한가운데를 걷는 거룩한 순례자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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