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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핵심에 따른 우리 믿음의 태도에 대한 묵상

 

따르고, 사랑하고, 용서하라는 부르심 앞에서 말씀에 굴복하고 누리고 내어주라는 응답 앞에 선다는 것은 나를 지키기 위해 움켜쥐던 손을 조용히 펴는 일입니다. 그 손을 펴지 못해 우리는 얼마나 자주 자기 확신이라는 이름의 방패 뒤에 숨어 있었던가요? 그러나 복음은 네가 옳으냐가 아니라 나를 따르겠느냐고 묻습니다.

 

1. 말씀에 굴복하라

프란치스코에게 순종은 단순히 규칙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뜻을 내려놓고 하느님의 현존 앞에 완전히 엎드리는 것입니다. 가난의 실재는 나를 비워낼 때 비로소 하느님의 말씀이 내 안에 마무실 자리가 생깁니다. 이는 수동적인 굴복이 아니라, 가장 위대한 사랑에 압도되어 기꺼이 나를 내어드리는 '거룩한 순종'입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내 고집과 판단을 내려놓고, 상대방 안의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겸손의 실재를 의미합니다.

 

말씀에 굴복하는 것은 맹목적인 복종이 아니라,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순종'의 행위입니다. 우리의 것이라고는 악습과 죄밖에 없다는 성프란치스코의 고백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것을 내어주시는 하느님의 사랑 앞에 백기를 들고 항복하는 태도가 더 진실한 태도일 것입니다. 자기를 비우는 육화의 겸손에서 성프란치스코는 하느님의 동등성을 포기하고 사람과의 동등성으로 관계를 맺고자 하신 하느님의 가난과 겸손을 본받고자 했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셨듯, 우리도 내 자아를 비우고 하느님의 뜻이 내 안에 육화되도록 허용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육화된 말씀은 나의 변화를 촉진 시키고 나의 변화는 관계의 변화로 나아가 잉태된 말씀이 관계 안에 선을 낳음으로 교회가 살아 숩쉬는 것입니다. 이는 매일의 삶에서 내 뜻보다 성령의 이끄심을 우선하는 태도입니다. 교회의 가르침과 복음의 권위 앞에 내 자만심을 내려놓는 '가난한 마음'이 그 본질입니다.

 

말씀에 굴복하라는 초대는 나를 부정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다시 배우라는 부르심입니다. 나는 주인이 아니라 제자이며, 길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열려 있는 길을 뒤따라 걷는 사람임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순명은 고개를 숙이는 굴욕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하심 앞에 내 고집을 내려놓는 자유의 선택입니다. 내 뜻이 옳다는 증명을 멈추고 주님, 지금 말씀대로 당신 뜻이 제 안에서 이루어지기를삶으로 고백하는 자리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셨듯, 하느님께서 우리의 조건과 시간과 관계 안으로 스스로를 비우고 들어오셨듯, 우리의 따름 또한 내 자아를 비워 그 뜻이 내 삶 안에서 살과 피를 입도록 허락하는 길입니다. 말씀에 굴복한 사람은 어느 순간 깨닫습니다. 말씀은 나를 억누르지 않고 이미 나를 살게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2. 말씀 안에서 누리라

피조물과의 화해와 기쁨의 실재가 여기에 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세상을 도피의 대상이 아닌,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장소로 보았습니다. "태양의 찬가"에서 보여주듯, 달과 별, 바람과 불을 형제와 자매로 부르며 그 안에서 하느님을 누렸습니다. 말씀에 굴복한 영혼은 세상 만물 속에서 하느님의 선하심을 발견하고 '완전한 기쁨'을 누립니다. 이는 나와 관계 맺는 모든 이를 '선물'로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드러나고 상대의 부족함조차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바라보면 측은하게 바라보는  내적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영적 여유를 갖게 됩니다. 말씀 안에서 누리는 태도는 이 세상을 하느님의 은총이 통과하는 성사로 보는 것입니다. 성프란치스코에게 만물은 하느님을 드러내는 거울이었습니다. 말씀을 누린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성체성사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을 대하듯 일상의 모든 사건과 사물 안에서 주님의 현존을 맛보는 것입니다. 타인을 단순한 인간으로 보지 않고 '하느님의 모상'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관계 안에서 진정한 영적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말씀을 누린다는 것은 타인을 경계의 대상이 아니라 하느님의 모상으로 바라보는 것이며 관계는 짐이 아니라 사랑을 배우는 학교가 됩니다. 이렇게 경험된 지식으로써의 말씀은 우리에게 커다란 기쁨을 선물로 안겨줍니다. 우리는 사랑하라는 명령을 의무로 오해해 왔지만, 사랑은 말씀을 누리는 이에게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숨결입니다. 하느님이 나를 이만큼 사랑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진실로 누린 사람만이 타인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누린 말씀은 머무르지 않고 반드시 흘러갑니다.

 

3. 말씀의 사랑을 나누라

이 말은 비움의 끝에서 시작되는 선교적 실재가 시작되는 현장입니다. 프란치스코에게 나눔은 남는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평화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평화의 도구의 실재는 상대방의 마음을 흐트러뜨리지 않게 하는 소극적 태도와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필요성을 말없이 채우는 적극적인 태도로 드러납니다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 나병 환자의 손을 잡았던 프란치스코처럼, 나눔은 관념적인 사랑이 아닌 고통받는 이들의 실재적인 이웃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용서와 화해를 통해 깨어진 관계를 복원하는 것이 가장 큰 나눔입니다. 내가 먼저 용서받았음을 깨닫고, 그 사랑의 빚을 타인에게 갚는 구체적인 실천입니다.

 

말씀의 사랑을 나누는 현장은 공동체적 친교와 사랑의 실천으로, 개인의 내어줌을 넘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친교를 완성하는 행위로 드러납니다. 나눔은 용서의 실재로 이어집니다. 용서는 내가 받은 '자비'의 결과물입니다. 프란치스코가 "용서함으로써 용서받는다"고 노래한 이유입니다.여기서 보편적 형제애가 나옵니다. 프란치스코 영성의 실재는 '가장 보잘것없는 이' 안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나눔은 내 소유를 떼어주는 행위를 넘어, 상대방과 존재론적인 형제적 유대를 맺는 관계 안에서 꽃이 핍니다.

 

말씀을 나눈다는 것은 내가 옳음을 주장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받은 자비를 내어주는 일입니다. 용서는 강한 이의 결단이 아니라 이미 용서받은 이의 가장 현실적인 응답입니다. 우리는 용서를 참아내는 도덕으로 착각하지만, 복음의 용서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다시 형제가 되는 사건입니다. 상대 안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알아보는 순간, 나눔은 시혜가 아니라 존재의 연대가 됩니다. 가장 보잘것없는 이,가장 불편한 관계, 가장 피하고 싶은 자리에서 그리스도를 알아보는 눈. 그 눈을 가진 사람만이 평화의 도구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은 우리 삶 안에서 하나의 길이 됩니다.

 

따르기에 말씀에 굴복하고, 사랑하기에 말씀을 누리며, 용서하기에 말씀을 나눕니다. 이 세 가지는 따로 떼어낼 수 없는 하나의 순환이며, 복음이 오늘도 우리 안에서 살아 있음을 증언하는 방식입니다. 말씀에 굴복할 때 우리는 제자가 되고, 말씀을 누릴 때 우리는 사랑의 사람이 되며, 말씀을 나눌 때 우리는 이미 복음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삶 자체가 가장 설득력 있는 복음의 선포가 됩니다.

 

성프란치스코의 영성은 관념에 머무는 신학이 아니라, '살아있는 실재'를 몸소 살아내는 역동적인 영성입니다. "굴복하고, 누리고, 나누라"는 원리는 프란치스칸의 핵심 가치인 비움과 형제애 안에서 더욱 깊은 울림을 갖게 됩니다. 프란치스칸 영성의 실재는 관계적 태도에서 드러나며 굴복은 자기 비워서 내 판단을 유보하고 상대의 존엄을 인정하는 데서 드러납니다. 모든 존재 안에서 하느님의 흔적을 보며 기뻐하고 평화의 도구가 되어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쁨은 복음의 완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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