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그라든 인생길에 펼쳐진 인생길을 가려면 1
1. 오그라든 손에 대한 통찰
오그라든 인생길에서 활짝 펼쳐진 인생길로 나아가는 것은, 단순히 환경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내 존재의 문법이 바뀌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그라든 손을 펴고 그 길을 걸어가기 위해 필요한 영적 이정표를 프란치스칸의 마음으로 짚어봅니다. 움켜쥔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그 근원을 묻는 질문은, 우리 영혼의 가장 깊은 어둠과 대면하는 용기 있는 성찰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토록 단단하게 닫아걸게 하고, 무엇이 우리의 생명력을 마비시키는지 프란치스칸의 영적 시선으로 그 뿌리를 짚어보면 그 원인을 좀 더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를 움켜쥐게 하는 것
'결핍의 공포'와 '소유의 환상' 우리가 손을 움켜쥐는 가장 큰 이유는 '내일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가짜 안전장치인 돈, 명예, 자존심, 혹은 '내가 옳다'는 확신을 움켜쥐면 안전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것들을 놓치면 내 실존이 무너질 것 같은 공포가 손가락에 과도한 힘을 주게 만듭니다.
비교라는 찬바람, 타인의 밥상과 내 밥상을 비교하기 시작할 때 손은 더 세게 오그라듭니다. 내가 가진 것이 부족해 보일수록, 우리는 이미 손에 든 작은 조각조각을 필사적으로 방어하게 됩니다. 또한 과거에 손을 폈다가 상처받았던 기억, 누군가에게 내어주었다가 거절당했던 아픔이 보호막으로서의 '주먹'을 만들게 합니다.
우리를 마비시키는 것 : '단절'과 '자기 연민'
마비는 흐르지 않을 때 찾아옵니다. 하느님의 자비가 흘러 들어올 틈이 없을 때 영혼은 굳어버립니다. 단절된 관계는 피조물이 나를 위해 차려진 '보편적 밥상'임을 잊고, 세상을 적으로 보거나 경쟁자로 볼 때 영적 마비가 찾아옵니다. 나 혼자만의 성벽을 쌓는 순간, 생명의 온기는 차단되고 마음은 얼어붙습니다.
자기 연민의 늪에 빠지면 "나만 힘들다", "나만 피해자다"라는 생각이 우리를 가장 강력하게 마비시킵니다. 자기 연민은 시선을 안으로만 향하게 하여, 밖에서 건네오는 하느님의 무상한 손길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영적인 눈가림입니다. 존재로서가 아니라 기능(Doing)으로서 자신을 평가할 때 우리는 마비됩니다. 무언가를 해내야만 가치 있다는 강박은 우리를 하느님의 자비를 받는 '귀한 존재'가 아니라 '일하는 기계'로 전락시킵니다.
'오그라든 손'에 대한 깊은 통찰은 단순히 신체적 현상을 넘어, 인간의 고립된 실존과 하느님의 구원적 개입이 만나는 가장 극적인 지점을 보여줍니다. 프란치스칸 영성의 핵심인 '가난'과 '겸손'의 눈으로 이 상징을 더 깊이 파고들어 봅니다.
자기 방어라는 감옥 : 움켜쥐었으나 잃어버린 손
오그라든 손은 본래 '지키려는 의지'에서 시작됩니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내 것을 뺏기지 않으려고, 혹은 생존의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손을 움켜쥡니다.
통찰: 역설적이게도 손을 꽉 쥘수록 우리는 아무것도 잡을 수 없게 됩니다. 손안에 든 작은 것 하나를 지키려다, 하느님이 우주 전체로 차려주신 '보편적 밥상'을 놓치게 되는 것이 실존적 비극입니다. 움켜쥔 손은 타인과의 소통이 단절된 '닫힌 세계'를 상징합니다.
마비된 실존 : '나'라는 우상에 갇힌 상태
복음서에 등장하는 손이 오그라든 사람(마르코 3,1-6)은 자기 힘으로는 그 손을 펼 수 없습니다. 오그라든 상태는 단순히 이기심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마비'된 상태입니다. 나밖에 모르는 삶은 선택이 아니라, 온기를 잃어버린 영혼이 처한 불가항력적인 추위입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도덕적 훈계가 아니라, 얼음을 녹이는 '무상의 온기' 즉,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이렇게 오그라든 손에 대한 처방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비우고 바라보기
성 프란치스코는 우리를 움켜쥐게 하는 '소유욕'과 마비시키는 '자만'을 치료하기 위해 가난을 선택하셨습니다. 여기서 가난은 단순히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 것이라 주장할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인정하는 자유입니다. 움켜쥐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내 생존이 내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이 매일 차려주시는 무상의 밥상에 달려 있음을 신뢰할 때, 비로소 손에 힘이 빠집니다. 또한내가 하느님의 자비를 건네주는 '통로'일 뿐임을 깨달을 때, 즉 나라는 좁은 틀을 벗어나 타자와 피조물을 향해 시선을 돌릴 때 마비된 영혼에 피가 돌기 시작합니다.
움켜쥐었던 '내 설계도'를 내려놓는 용기
인생이 오그라드는 이유는 내가 내 삶의 모든 것을 통제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 때문입니다. 펼쳐진 길로 가려면: 내가 삶의 '주인'이 아니라 하느님이 초대하신 '손님'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내 계획대로 되지 않아 오그라들었던 마음을 내려놓고, 하느님이 오늘 내 생존 위에 차려주신 '무상의 밥상'을 신뢰하는 것에서부터 길은 펴지기 시작합니다.
'지금, 여기'의 선물에 경탄하기
오그라든 인생은 대개 '지나간 후회'나 '오지 않은 불안'에 매여 있습니다. 펼쳐진 길로 가려면: 성 프란치스코가 만물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했듯,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먹거리, 볼거리, 사람들을 하느님의 현존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작은 것 하나에도 "아, 귀하다!"라고 감탄할 때, 좁았던 내 인생의 시야는 우주만큼 넓게 펼쳐집니다.
'받는 존재'에서 '건네주는 존재'로의 전환
나만 생각하며 움츠러든 길은 늘 막다른 골목입니다. 펼쳐진 길로 가려면 "나는 자비를 건네주는 귀한 존재"임을 선포하며 걸어야 합니다. 신기하게도 내 시린 손을 녹이려 애쓸 때는 더 굳어버리지만, 나보다 더 시린 손을 가진 이에게 온기를 건네려 손을 뻗는 순간, 내 손의 마비가 먼저 풀립니다. 사랑은 건넬 때 비로소 내 안에서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