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태어나는 삶 2/2 (성전정화)
성프란치스코는 산다미아노 성당의 십자가로부터 "허물어져 가는 내 집을 고쳐라"는 말씀을 들었다고 말합니다. 프란치스칸들이 허물어져 가는 하느님의 성전을 보수하고 복구하려면 세 가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 너와 나와의 관계, 피조물과 나와의 관계에서 이미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내가 만든 성전을 허물어야 합니다. 자신의 업적과 공로로 만든 성전 안에서는 하느님과 너와 피조물은 이용의 대상이 되어버립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이야기를 통해 '내가 만든 성전'을 허물어야 하는 이유와 그 궁극적인 목적을 더욱 분명하게 깨닫습니다. 성 프란치스코에게 하신 "허물어져 가는 내 집을 고쳐라"라는 말씀은 단순한 물리적 성당의 보수를 넘어, 하느님과의 관계가 무너진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라는 깊은 의미로 해석됩니다. 그리고 프란치스칸들이 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내가 만든 성전'을 허물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만든 성전' 안에서는 자신의 업적과 공로가 가장 중요시되며, 그 결과 하느님과 이웃(너), 그리고 모든 피조물이 이용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첫째,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는 하느님을 나의 성공과 업적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게 됩니다. 나의 신앙 행위가 하느님과의 진정한 교감이 아니라, 나의 공로를 쌓기 위한 행위가 됩니다. 둘째, 이웃(너)과의 관계에서는 이웃은 더 이상 함께 나아가야 할 동반자가 아니라, 나의 우월함을 증명하거나 경쟁에서 이겨야 할 대상으로 변질됩니다. 셋째, 피조물과의 관계에서 자연과 환경은 하느님의 창조물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자원으로만 인식됩니다.
진정으로 '하느님의 성전'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나 업적을 내려놓고, 그 안에 뿌리 박힌 이기심과 소유욕을 먼저 허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느님과 이웃, 그리고 피조물과의 관계가 이용이 아닌 사랑과 공존의 관계로 회복될 수 있다는 깊은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성전 뜰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장사꾼들과 환전상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밧줄로 채찍을 만들어 양과 소를 모두 쫒아 내시고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며 그 상을 둘러엎으셨다. 그리고 비둘기 장수들에게 이것을 거두어 가라, 다시는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 (요한 2,14-16)
우리가 해야 할 성전 정화는 신심위주의 신앙과 인과응보의 틀을 허물고 예수님을 따르고, 배우고, 행하는 말씀 중심의 삶으로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요한복음의 예수님은 단순히 물질적인 장사꾼들을 쫓아낸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를 거래와 이기심으로 왜곡시킨 당시 종교 시스템의 본질을 뒤엎으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지금까지 '내가 만든 성전'이라고 부르던 것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소와 양과 비둘기, 그리고 환전상은 '인과응보의 틀'을 상징합니다. 하느님께 드려야 할 제물을 돈으로 사고파는 행위는, 나의 공로와 업적으로 하느님의 은혜를 '구매'하려 했던 우리의 모습을 반영합니다. 이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순수한 믿음과 사랑이 아닌, 이기적인 거래 관계로 만들었습니다.
'신심 위주의 신앙'은 겉으로는 경건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내면의 변화 없이 형식에만 치우친 신앙을 의미합니다. 이는 성전 뜰에서 장사를 하며 하느님을 예배하는 척했던 사람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진정한 성전 정화는 내면의 장사꾼들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신심 위주의 신앙'이라는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인과응보의 틀'에 갇힌 거래적 관계를 끊어내고, 오직 예수님을 따르고, 배우고, 행하는 '말씀' 중심의 삶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이는 하느님의 은혜를 사고파는 거래적 신앙에서 벗어나, 하느님과의 순수한 사랑과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성전 정화의 시작이자 완성이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개인의 신앙에서 '내가 만든 성전'을 허물고 '말씀 중심의 삶'으로 새로 태어나는 구체적인 예를 다음과 같이 들 수 있습니다.
1. 인과응보의 틀을 허물기
"내가 이렇게 열심히 기도하고 봉사하고 헌금했으니, 하느님께서는 당연히 나에게 복을 주셔야 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내가 뭘 잘못했지?"라고 자책하며, 축복은 나의 공로 때문이라고 여깁니다. 이것은 신앙을 하느님과의 거래 관계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 중심의 삶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름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무상으로 주어지는 하느님의 은혜는 나의 행위나 노력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순수한 선물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봉사나 헌금은 나의 의무가 아닌,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으로 하는 것이며,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에서 나오는 자발적으로 행하는 것이며, 결과에 상관없이 하느님께 감사하는 태도를 가집니다.
2. 신심 위주의 신앙을 허물기
"매일 미사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성경 통독과 성경 쓰기를 몇 번이나 마쳤고, 묵주기도와 특정한 기도문을 수없이 바쳤으며, 희생과 제물을 이만큼 바쳤으니 나는 거룩하고 좋은 신앙인이야"라고 스스로에게 점수를 매기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은 정해진 신앙생활의 틀을, 지키고 바치는 것에만 집중하고, 실제 삶에서 이웃을 사랑하거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에는 소홀히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중심적이고 업적과 공로를 쌓은 대가로 하느님이 복을 주실 것이라고 믿는 기복적인 신앙에서 말씀을 중심으로 완전히 바꿔야 합니다. 형식적인 신앙 행위에 얽매이지 않고, 말씀이 가리키는 방향에 따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관계를 회복하게 하려는 마음으로, 행동하는 자비와 선이 관계를 비추도록 완전히 틀을 바꾸어야 합니다. 사랑받고 있음에 대한 응답으로 너와 피조물을 통하여 다시 하느님께 되돌려드리는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너와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비와 선을 나에게 날라다 주는 존재이며, 받은 사랑에 응답하기 위하여 너와 피조물을 통해서만 돌려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만든 성전'을 허물고 '하느님의 성전'을 회복해야 한다는 통찰은, 은총과 겸손, 그리고 참된 사랑을 강조하는 가톨릭 영성의 본질을 담고 있습니다. "허물어져 가는 하느님의 교회"는 단순한 건물을 넘어 그리스 도의 신비체를 의미합니다. 이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지체인 모든 신자들로 이루어진 살아있는 영적 유기체입니다. 이 신비체는 외부의 공격이 아닌 그 지체들, 즉 우리 각자가 이기심과 탐욕으로 쌓아 올린 '내가 만든 성전' 때문에 허물어집니다. 업적, 공로, 소유를 내세우며 "나"를 하느님의 자리에 두는 행위는, 실질적인 우상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우상은 신비체의 유기적 연결망인 성사와 선의 통로를 막아버립니다.
내가 만든 성전( 펠라기우스주의의 현대적 변형)
성 프란치스코와 예수님의 성전 정화는, 인간의 힘만으로 구원을 얻으려 하는 펠라기우스주의와 같은 잘못된 신앙의 틀을 깨는 행위입니다.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은 인간의 노력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지만, 구원의 시작과 끝은 오직 하느님의 은총임을 강조합니다. 포장하고, 증명하고, 자랑하는 행위는 나의 선행과 노력을 하느님 은총의 원천으로 여기는 펠라기우스주의적 태도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겸손한 의탁 대신,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우월함을 입증하려 합니다. 비교하고 경쟁하는 행위는 '완전주의'의 함정에 빠져, 나의 신앙적 위치를 타인과 비교하며 끊임없이 불안해하는 모습입니다. 이러한 행위는 하느님과 온전히 일치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보다, 인간적인 성취에 집착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내가 만든 성전 안에서 하느님과 이웃, 피조물은 이용의 대상이 되어버립니다. 이는 가톨릭 신앙의 가장 핵심인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두 계명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죄입니다.
성전 정화는 은총과 겸손으로 회복하는 여정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진정한 성전 정화는 내면에서 이기심과 탐욕을 몰아내는 것입니다. 이는 성체성사와 고해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이고, 오직 하느님께 의탁하는 겸손의 덕을 쌓는 것이며, 하느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나의 공로를 내려놓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의 선물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 진정한 응답으로써의 기도가 시작됩니다. 여기서 단절되었던 이웃과의 관계 회복이 시작됩니다. 이웃을 경쟁의 대상이 아닌, 하느님의 자비와 선하심이 관계 안에서 흐르도록 사랑의 통로로 여길 때 사랑의 공동체가 회복됩니다. 또한 피조물을 소유의 대상이 아닌, 하느님의 창조물로 존중하고 피조물 안에 숨겨진 선과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도록 돕는 성전 정화는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밧줄과 채찍을 들고 우리 마음속의 '장사꾼들'을 내쫓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영의 현존이 머무시는 사랑과 은총의 성전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