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복음에서 율법교사는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인지 묻습니다. 예수님은 율법과 예언서의 핵심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분리된 것이 아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을 드러납니다. 우리 신앙생활과 수도생활의 관건은 하느님 사랑과 나를 포함한 이웃 사랑을 어떻게 하나로 엮어 내는 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 모델을 예수님 성모님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성모님의 하느님 어머니가 되심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엮어낼 수 있는 열쇠가 아닌가 합니다. 우리의 신앙 여정에서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됨을 살아가는 것과, 하느님 사랑이 더 깊어지면서 우리가 하느님을 낳는 이가 되어갈 때, 우리는 삼위일체의 신비에 참여할 것입니다.
이를 프란치스코도 삶의 경험을 통해 알았고,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를 말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에게 그 시작점은 아마 나환자와의 만남일 것입니다. 이 만남에서 프란치스코는 나환자를 진정으로 만났고 그 가운데에 하느님이 진정으로 낳음을 받음을 체험하였습니다.
누군가 나환자의 입장에서 이 만남을 이야기 한 것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형제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나병을 5년 동안 앓고 있었고 아시시 시로 들어가는 것은 그동안 금지되었지요. 당신은 당신의 몸이 썩어 문드러지는 것을 보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모를실 것입니다. 그 냄새는 역겹지만 당신은 이것보다 더 고통러운 것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어떤 누구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고 심지어 나의 곁에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음식 조각들을 던져주지요. 그런데 종종 어떤 이들은 저에게 돌을 던지곤 한답니다. 어떤 누구도 결코 나를 만지려 하지 않아요. 이 외로움과 버림받음은 견디기가 너무 어려웠지요. 심지어 하느님도 멀리 있는 것처럼 느꼈지요. 나에게 희망을 준 한 사람이 있어요. 지금 사람들을 그를 아시시의 성인이라 불러요.
하루 저는 단지 양귀비꽃과 다른 아름다운 꽃들을 보기 위해 나환자들의 움막을 떠났지요. 제가 풀밭을 걸어가고 있을 때, 갑자기 저 앞에 말을 탄 한 잘생긴 젊은 이가 서 있었어요. 우리 둘은 깜짝 놀라 한 걸음씩 물러났지요. 저는 그가 느낀 역겨움을 보았고 느낄 수 있었고, 곧 이어질 심한 욕이나 돌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런데…
그가 말에서 내려왔어요. 그의 얼굴은 평화의 거울처럼 되었고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는 나의 어깨를 잡고, 나에게 키스를 했어요. 이 아름다운 이가 5년만에 나를 끌어안아 준 첫 사람이었어요! 그가 미소 지으며 물러났을 때 내 눈은 눈물로 뒤덮였지요. 그 이후 저는 혼자라고 느끼지 않아요. 결코… 심지어 하느님은 제 곁에 있어요. 하나의 만남과 접촉이 저를 바꾸었고 저의 믿음을 새롭게 하였고, 제가 희망을 간직할 이유가 되었지요. 저의 육체는 계속해서 무너지고 있지만 저의 영혼은 영원히 전환되었지요. 프란치스코가 나를 만졌고 나는 계속 살아나고 있지요.
우리의 수도생활과 신앙생활이, 누군가에게 무엇을 가르치는 차원을 넘어서서, 진솔한 만남이 우리 가운데에 일어나며 하느님이 그 가운데에서 만나지고 만져지고 냄새나는 그런 현재가 일어나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