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어떤 바리사이가 주님을 식사 초대합니다.
우리는 아무나 식사 초대를 하지 않지요.
존경하거나 적어도 사랑하는 사람을 초대합니다.
그런데 이런 바리사이를 주님은 호되게 비난하십니다.
주님께서 식사 전 정결례를 행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그가 비난한 것도 아니고 그저 놀라워했을 뿐인데
이것을 주님께서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비난하십니다.
이렇게 호의를 싹 무시하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듯한 주님을 보면
주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 너무 모질다는 생각이 들어
주님을 초대한 바리사이를 꼭 집어 비난하신 게 아니라
바리사이를 일반화하여 비난하신 거라고 변호도 하지만
어쨌거나 주님께서는 겉과 속이 다름을,
아니 겉치레를 거의 신경질적으로 싫어하시고 배격하십니다.
그것은 속 건강이 너무 안 좋아 피부에 뭐가 계속 나는데도
속병을 고치려 하기보다 화장을 통해 감추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압니다.
피부가 깨끗하고 아름다우려면 속병을 고쳐야 하고,
속병을 고치려면 몸에 해로운 걸 먹지 말아야 하며,
해로운 것을 먹지 않으려면 해로운 것에 대한 욕구가 없어야 함을.
그런데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속병은 무엇이고,
무엇이 영혼에 해로운 것들입니까?
제 생각에 이 세상의 만족이 그것들입니다.
칭찬과 명예와 같은 좀 더 고차원적이고 고상한 만족에서부터
권력이나 부나 지식과 같이 이 세상에서 힘을 발휘하게 하는 것과
옷이나 먹는 것과 같이 저차원적이고 사치스러운 만족에 이르기까지
우릴 천상으로 향하게 하지 않고 이 세상에 안주케 하는 것들입니다.
이렇게 이 세상 것으로 만족하려는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을 이런 것들에 대한 탐욕 대신
하느님의 사랑으로 채우라고 오늘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 것들에 대한 탐욕은 우리를 미움, 시기 질투, 분노 같은 것으로 채워
우리 안에 평화라고는 하나도 없고 오직 화가 가득 차게 할 뿐이니
이것들의 원인이 되는 탐욕은 비워내고 하느님 사랑으로 충만케 하라 하십니다.
우리는 누구나 가진 것을 줄 수 있습니다.
없는 것을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미움밖에 없는 사람은 미워할 수밖에 없고,
하느님 사랑이 없는 사람이 자비를 실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으로 충만하면
우리는 그때 우리가 가진 것으로 자비를 실천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주님께서 하신 이 말씀의 뜻일 것입니다.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