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20,1-2.11-18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면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전하였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동이 트기도 전, 어둠 속에서 무덤으로 갑니다.
주님을 잃은 슬픔이 그를 그 자리로 이끈 것입니다.
그는 울며 찾고, 또 찾습니다.
이 ‘찾는 사랑’이 오늘 복음의 첫 번째 빛입니다.
성 나지안조의 그레고리오는
부활을 ‘파스카(건너감)’의 신비로 깊이 노래한 교부입니다.
그는 부활을 머리로 증명하기보다
사랑으로 ‘알아보는’ 사건으로 봅니다.
마리아도 처음엔 슬픔에 가려
부활하신 주님을 정원지기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이름을 부르시는’ 순간,
그의 눈과 마음이 열려 “라뿌니!” 하고 응답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를 무리로가 아니라 ‘이름’으로 부르십니다.
그 한 사람을 향한 부르심에 돌아설 때,
우리는 비로소 그분을 알아봅니다.
“나를 붙잡지 마라”는 말씀은
매정한 거절이 아닙니다.
옛 모습 그대로 붙들어 두려는 손을 놓고,
빛으로 변모하신 부활의 그리스도를
새로운 신앙으로 만나라는 초대입니다.
그리고 곧바로 사명이 따라옵니다.
“내 형제들에게 가서 전하여라.”
주님을 만난 사랑은
반드시 ‘가서 전하는’ 사명으로 흘러갑니다.
교부들은 이 장면에서
‘부활 동산의 새 하와’를 봅니다.
옛 동산에서 한 여인이 죽음의 소식을 들였다면,
부활 동산에서 한 여인이
무덤에서 생명의 소식을 들고 나옵니다.
일치의 관점에서 보면
마리아의 사명은 ‘흩어진 이들을 모으는 일’이었습니다.
두려움에 숨어 뿔뿔이 흩어진 제자들에게 달려가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고 외친 그 한마디가,
절망으로 갈라진 공동체를
다시 한 부활 신앙으로 모았습니다.
부활하신 한 주님이
모든 일치의 중심이십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어둠 속에서도 주님을 ‘찾는 사랑’을 지니고 있는가?
나는 내 이름을 부르시는 그 음성에 돌아서는가?
나는 ‘붙잡으려는’ 옛 모습을 놓고 새 신앙으로 나아가는가?
나는 본 것을 ‘가서 전하여’ 흩어진 이를 모으는가?
주님,
어둠 속에서도 당신을 찾는 사랑을 주소서.
제 이름을 부르시는 음성에 돌아서게 하시고,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부활의 기쁨으로
흩어진 형제들을 다시 모으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