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분명 하느님을 좋아합니다.
하느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으라고 했는데
저는 하느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어느 정도 분명 맛본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축일을 지내는 마리아 막달레나와 비교할 땐
내가 과연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일까,
좋아하기만 하고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반성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하느님 사랑을 맛본 사람이고,
하느님 사랑이 맛이 있는 사람이며,
그래서 하느님 사랑을 좋아하긴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 같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줄곧 저의 영적 열등감이었고,
특히 마리아 막달레나와 비교할 때 그러합니다.
그러니까 사랑을 받고 누리기만 하는 것입니다.
햇빛이 좋아 햇빛을 거부하지는 않고 누리지만
누리기만 할 뿐 열렬히 사랑하는 것은 아직 아닙니다.
이것을 잘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고 그래서
좋아하기만 하고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엄마의 사랑을 좋아하기에 거부하지 않고 그래서
엄마의 사랑을 다 누리지만 정작 사랑하는 것은 애인인 것과 같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어머니 사랑처럼
하느님의 사랑도 늘 나를 떠나지 않고 함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목마르지 않고,
그립지 않으며,
막달라 마리아처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는 것일 겁니다.
이것이 문제일까요?
큰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실은 그래서 문제입니다.
큰 문제이면 해결하려고 덤벼들 텐데
큰 문제가 아니고 작은 문제이기에 해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마치 유리창에 흙탕물이 튀어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되면 어떻게든 청소할 텐데
작은 먼지들이 쌓이면 어느 정도는 보이기에 그대로 두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받는 기쁨보다 사랑하는 기쁨이 더 크고 완전하지요.
사랑이란 받는 것만으로는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고 완전하지도 않지 않습니까?
생각해 보십시다.
사랑을 받기만 하고 할 수 없다면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일생 부모 사랑을 받기만 하다가 이제 사랑하려고 하는데
돌아가셔서 할 수 없게 되었다면 이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느님 사랑을 좋아만 하고 받기만 하면
오늘 막달라 마리아처럼 주님을 위해 사도의 사명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
곧 주님의 부활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사도의 사명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의 두 제자가 그랬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제자들이었지만
빈 무덤을 발견하고도 주님을 찾아 나서지도 않았고,
만나 뵙지도 못했고 그래서 사명은 받지도 수행하지도 못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얼마나 좋은지 맛보고 좋아만 할 것이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처럼 사랑해야 함을 깨닫고 사랑 찾아 나서는 우리가 돼야겠습니다.
오늘부터 포르치운쿨라 행진이 시작됩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글을 올리지 못할 수도 있을 겁니다.
잘 마칠 수 있도록 기도 부탁 드립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