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행동을
위선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예로 예언자들을 대하는 태도를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조상들이 예언자들을 죽인 것을
잘못된 행위로 판단합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그들의 무덤을 만들면서
예언자들이 살아있다면 그들을 존경할 것처럼 행동합니다.
성경에서 예언자는
하느님의 뜻을 이 세상에 전하는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하느님께서 예언자들을 세상에 보내시어
세상이 다시 하느님께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다보니 예언자들은
세상의 움직임과 다른 것을 말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세상이 반대하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옛날의 예언자들을 생각하면서
그들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지금의 모습을 버리고
하느님께 돌아설 것입니다.
단지 옛날의 예언자들을 좋게 표현하면서
그들을 좋게 말하는 자기들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은연중에 같이 이야기합니다.
옛날의 예언자들을 좋게 말하면서
그들의 뜻을 살아갈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 점을 예수님께서는 위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옛날의 예언자들이 말한 것을 따른다면
지금의 예언자들이 말하는 것도 따를 것입니다.
지금의 예언자들이 말하는 것을 따르면서
변화하는 것은 거부하면서
옛날의 예언자들이 받는 칭찬은 같이 받고 싶습니다.
그래서 옛날의 예언자와 지금의 예언자를 구분하고
다르게 대합니다.
옛날의 예언자를 말하는 것은
변화의 위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진정 불행한 이유는
자기 스스로 괜찮다고 말하면서
변화의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들을 위선자라고 질책하시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거부하는 그들을 안타까워하시는 것입니다.
내 내면을 바라보면서
그 모습을 인정하기에 나는 괜찮은 것인지
아니면 그것을 감추기 위해
나는 괜찮다고 말하는 것인지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