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의 어떤 부자는 불타는 지옥에서 물 한 방울을 목타하는 신세입니다.
이것을 보면서 이런 묵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이 세상에 살 때 이런 목마름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이 세상 살 때 하느님을 이 정도로 목말라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그는 그렇게 목말라하지 않았는데 왜 그러지 않았을까요?
그것을 복음은 그가 좋은 옷에다가 매일 즐겁고 호화롭게 산 부자였기 때문이라고,
독서는 하느님을 신뢰하지 않고 “사람에게 의지하고” “스러질 몸을 제힘인 양 여겨”
“하느님의 저주”를 받아 종국에는 “사막의 덤불”같이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독서는 두 가지 이유를 대는 것입니다.
하나는 인간에게 의지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는 자기 힘으로 할 수 있으면 좋다고,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하려는 태도도 좋다고 얘기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불교의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입니다.
직역하면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 나 홀로 존귀하다.’라는 뜻이지만
풀이하면 나라는 존재는 누구에게 의지하는 존재가 되어선 안 되고
이 우주 안에서 홀로서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며
이것을 흔히 ‘무소의 외뿔처럼 홀로 가는 존재’라고 얘기하곤 하지요.
그래서 모든 것이 자업자득(自業自得)이고 고통과 불행은 자기 업보(業報)이며
그러니 누구에게 의지하지도 누구를 탓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불교에서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당연하고 또 훌륭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인간에게 의지하거나 자기를 믿는 것은
하느님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요 그래서 하느님 구원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복음에서 부자가 잘못한 것은
거지 라자로의 가난과 고통을 외면한 잘못도 있지만
하느님께 의탁하지 않은 것이 무엇보다 큰 잘못이고,
자기의 부와 힘을 믿었기에 자기 안에 갇힌 것이 큰 잘못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하느님과 이웃과의 단절입니다.
하느님은 필요하지 않아서 단절하고,
이웃은 성가시기만 해서 단절했으며,
모든 것이 다 갖춰진 안락한 집에서
자기 가족들하고만 자유와 평화와 행복을 누리려고 했고,
이 세상 사는 동안에는 불행 중 다행인지, 행복 중 불행인지 그것이 가능했습니다.
어쨌거나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 가르치는 바는
하느님이 이것을 괜찮다고 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저주와 벌을 내리신다는 것이며 그것이
단절의 지옥이요 돈만 있고 사랑이 없는 자의 불행이라는 것입니다.
이웃은 의지하지 말고 사랑해야 하고
하느님은 만유 위에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가르침 받는 오늘 우리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