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 사도와 테살로니카 신자들의 관계는 아주 모범적입니다.
코린토 신자들과의 관계와 비교할 때 더 그러합니다.
우선 바오로와 동료들은 복음을 선포하면서
신자들에게 아무런 폐를 끼치지 않았습니다.
생계를 스스로 해결하면서 복음을 선포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하느님의 복음을 여러분에게 선포하였습니다.”
이것은 프란치스코에게도 모범이 되어서 초기 프란치스칸들은
바오로와 동료들처럼 일하면서 복음을 선포하였고
저도 여러 차례 시늉으로 그런 적이 있었지요.
바오로 사도는 또한 신자들에게 자부다운 사목 면에서 모범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바오로는 얼마나 자신이 있는지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는 아버지가 자녀들을 대하듯 여러분 하나하나를 대하면서,
하느님께 합당하게 살아가라고 여러분에게 권고하고 격려하며 역설하였습니다.”
이것은 지난 며칠 주님께서 나무라시는 바리사이나 율법 학자와 다른 점입니다.
그들은 백성들에겐 무거운 짐을 지워주면서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 않았고,
윗자리와 존경받는 것만 좋아하면서 군림하는 지도자의 모범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오로는 복음을 선포할 때 아버지의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고 격려했지만
신자들 가운데서 그저 생활할 때는 어머니처럼 지냈다고 어제 서간은 얘기하지요.
“그러나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에서,
자녀들을 품에 안은 어머니처럼 온화하게 처신하였습니다.”
이런 어머니다운 처신과 아버지다운 가르침 덕분에 갈라티아 신자들은
신앙적으로 훌륭한 태도를 보였다고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칭찬합니다.
“우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신자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훌륭한 스승에 훌륭한 제자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코린토 신자들은 어땠습니까?
코린토 서간을 보면 바오로 사도가 여러 가지로 그들을 매우 나무라지요.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이 훌륭하지 않았기 때문입니까?
바오로 사도가 잘못 가르친 것이 아니라
코린토 신자들이 가르침을 잘못 받은 것이지요.
더 정확히 얘기하면 가르침을 받지 않거나 잘못 받아들인 것입니다.
저의 수도 생활 대부분은 형제들을 양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똑같이 얘기해도 알아듣는 형제가 있고 못 알아듣는 형제가 있으며
똑같이 가르쳐도 잘 받아들이는 형제가 있고 그렇지 않은 형제가 있습니다.
제가 누누이 말씀드린 바가 있지요.
받는 것을 잘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안 받거나 잘못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을 줘도 받지 않고 미움으로 바꿔 받습니다.
상처는 잘 받고 가르침은 안 받습니다.
아무튼 갈라티아 신자들은 가르침을 잘 받았습니다.
개떡같이 얘기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었다고나 할까,
바오로 사도의 말을 인간의 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갈라티아 신자들의 모범에서 도전과 자극을 받는 오늘 우리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