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계명, 즉 사랑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소중하게 따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반대로
하느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어제 말씀에서 우리가 사랑을 하는데
그 사랑은 우선 우리가 하느님께 받아야 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오늘 복음과 연결하면
우리가 하느님께 사랑을 받아서
그 사랑으로 서로 사랑할 때
우리는 또 다시 하느님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즉 사랑을 받는 것과 사랑을 주는 것이
계속 반복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반복으로 끝나지 않고
충만한 사랑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에서 충만한 사랑은 또한
하느님과 함께 사는 삶을 가리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결과
우리는 하느님을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선택의 갈림길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할 것인지
그래서 예수님의 계명을 따를 것인지
각자 선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따라
하느님을 볼 수 있는 사람과 볼 수 없는 사람으로
구분됩니다.
유다는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왜 누구에게는 드러내시고
누구에게는 드러내지 않으시는지 묻습니다.
질문의 표현은
예수님께서 감추시는 것처럼 나타나지만
사랑의 관점, 다시 말해 계명의 관점에서는
각자의 선택이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드러내지 않으신다기보다는
예수님을 선택하지 않은 결과
스스로 예수님을 보지 않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사랑 받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계명이라는 것에만 집중해서
나 혼자의 힘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버거움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고
그러다보면 지쳐서
그 사랑을 포기하고 싶어집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도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도
포기하게 됩니다.
계명이라는 말 때문에
우리가 모든 것을 해야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혼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하는 공동작업입니다.
천천히 하느님과 발을 맞춰가면서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