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오늘 복음은 구원받을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어떤 사람이 묻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이것을 보면서 저는 그 어떤 사람이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 구원이든 세상의 구원이든 구원에 관해 관심이 없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실로 행복 관심은 많아도 구원 관심은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 아닙니까?
관심(關心)이란 무엇에 관(關)한 마음 또는 관련(關聯)한 마음이니,
행복 관심은 행복에 관한 마음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구원 관심이 없는 행복 관심은 이 세상에서의 행복에만 관심이 있는 거지요.
반면 구원 관심은 이 세상에서의 행복은 물론
저세상에서의 행복까지 행복한 곧 영원한 행복에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복 관심밖에 없는 사람은 저세상에 관해서는 무관심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구원과 관련한 세 부류의 사람에 관해 묵상을 해봤는데,
첫 번째 부류는 앞서 본 바와 같이 구원 무관심의 사람들이고,
두 번째 부류는 구원 관심은 있지만 자기 구원에만 관심 있는 부류입니다.
말하자면 구원 이기주의라고 할 수도 있는데 어떻습니까?
이기주의자라면 나쁜 사람이라고 비난해도 되겠습니까?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이 사람이 자기만 구원받기 위해 자기만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구원으로 도달하는 사다리를 걷어찬다면 나쁜 놈이 분명하지만
그렇지만 않다면 그런 이기주의는 이해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주님께서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쓰라고 하셨잖습니까?
이기주의란 어떻게 보면 좋은 것입니다.
이기주의란 나를 이롭게 하는 주의잖아요?
그러므로 이 세상 행복에만 관심 있는 사람보다
구원 이기주의자는 구원 사다리를 탄 현명한 사람입니다.
그렇긴 하지만 뭔가 아쉽지요?
행복 관심만 있는 구원 무관심자보다는 현명하지만
더 현명해야 하고 더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기가 쉽지 않아서 그렇지
더 사랑이 많은 사람이 더 현명한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자기 사랑밖에 없는 자보다 이웃 사랑도 있는 사람이
더 사랑이 많고 더 현명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잖습니까?
그러므로 진정 현명한 구원 이기주의자라면 자기가 타고 올라간 구원 사다리를
걷어차지만 않으면 되고 먼저 올라간 사다리로 이웃도 올라오게 하면 됩니다.
그래서 오늘 독서 이사야서는 주님께서 모으신 사람들 가운데 살아남은 자들을
“나에 대하여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내 영광을 본 적도 없는 먼 섬들에”
보내시어 당신 영광을 알리고 그들을 예루살렘으로 데려오게 하리라고 하십니다.
아무튼 우리는 구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좁은 하늘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되라고
나도 초대 받고 너도 초대하는 사람들인데
그렇게 되기로 결심하는 오늘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