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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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18일 부활 5주일
고 도미니코 신부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의 배경은 제자들에게 발을 씻기는 세족례와 마지막 만찬에서 비롯된 고별예식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이 배경은 주님의 사랑이 어떻하셨는지 보여줍니다: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13,1)
이 구절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무엇이며 마지막 까지 남기고 싶은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해 줍니다. 다시 말해서 당신의 마지막 유언을 제자들에게 알리는 삶의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끝까지 사랑하셨다’는 말은 그분이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제자들을 사랑하셨고 또한 그 사랑은 가능한 모든 사랑을 뛰어넘는 최고의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당신의 유언인 사랑의 계명을 말씀하기전 예수님은 사랑의 행동을 몸소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만찬을 함께하기 전에 식탁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른 뒤에 제자들의 발을 차례로 씻어주십니다. 이러한 행위는 온전한 사랑을 나타내는 하인의 자세입니다. 고대 팔레스티나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맨발로 다녔고 그들에게는 발이 몸에서 가장 더러운 부분이었습다. 따라서 발을 씻어주는 것은 노예나 하는 일이었습니다. 이 발 씻김의 행위는 가장 낮은 자로서의 봉사요 사랑의 내어줌입니다. 다른 한편 남의 가장 더러운 부분을 씻어주는 일은 친밀함의 표시이기도 합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고 다시 식탁에 돌아온 예수님은 세족례의 참된 의미를 밝혀주십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13,14-15).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보여 주신 사랑을 그대로 살아가라는 사랑의 실천을 말하십니다.
그리고 나서 주님께서는 함께 만찬을 하면서 몹시 번민하십니다. 당신의 제자에게 배반을 당할 것을 미리 아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을 팔아 넘길 가리옷 사람 유다도 만찬에서 제외시키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친히 포도주에 빵을 적셔 그에게 주십니다. 자신을 배반하는 사람까지도 사랑으로 품어안으시는 그 큰 사랑을 우리에게 남겨 주신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배경위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떠나면서 마지막 유언으로 당신을 사랑하라고 하거나 당신이 사랑한 아버지 하느님을 사랑하라고 하지 않고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서로에 대한 사랑 안에는 이미 당신에 대한 사랑과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당연히 포함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하는 방법은 당신이 제자들을 사랑한 것처럼 ‘끝까지’,곧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온 힘을 다해서 서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은 옛날부터 있던 계명이지만,예수님께서 사랑하신것과 같은 사랑으로 사랑하라는 것, 이것이 새로운 계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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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간 성서읽기> 에페 1-6장
<생태 문화 주간> 음악/미술/독서 등. 생태 품앗이


성체성사(현존, 희생, 그리고 친교의 신비) / 로렌스 페인골드
성체성사는 무엇인가요? 육화와 파스카 신비 이후—이 두 가지는 성체성사 안에서 현존하게 됩니다—성체성사는 유배 상태에 있는 인간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가장 큰 선물입니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지구상의 하늘입니다. 1980년 「일요 만찬」에서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우리는 성체성사가 전체 교회의 특별한 소유임을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신적 배우자가 자신의 배우자에게 제공하고 끊임없이 제공하는 은총과 성사의 가장 큰 선물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것과 우리에게 요구하는, 즉 감사함에 충실해야 합니다.
23년 후, 그의 회칙 「성체 교회」(2003)에서 다시 이렇게 썼습니다:
오늘 저는 그 논의의 실마리를 새롭게 잡고, 제 마음속에 더 큰 감정과 감사를 담아 시편의 말씀처럼 외칩니다: “나 무엇으로 주님께 갚으리오? 내게 베푸신 그 모든 은혜를. 구원의 잔을 들고서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네”(시편 116:12-13).
그는 또한 "성체성사는 내 삶의 절대적인 중심이며, 매일의 삶의 중심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교황에 선출된 후, 베네딕토 16세는 2005년 5월 13일 라테란 성 요한 대성전에서 로마 성직자들에게 이 말을 인용하며 자신의 것으로 삼았습니다.
「성체 교회」 9항에서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더욱 나아가서 "성체성사는 신자 공동체 안의 그리스도의 구원의 현존이자 영적 양식으로서, 교회가 역사의 여정을 가는 동안 가질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소유물입니다."라고 썼습니다. 이는 매우 강력한 선언입니다. 성 요한 바오로는 성체성사가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실제로 주신 가장 큰 선물일 뿐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것이 교회의 지상의 순례 기간 동안 교회에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 말합니다.(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