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사람일까요?
성령의 사람과 육의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일까요?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일까요?
왜 이런 질문을 했느냐 하면 오늘 주님께서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에게 불행하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얘기를 들은 그들은 자기들이 왜 불행하냐고 반문하고,
자기들은 행복하다고 강변할 것입니다.
그럴 것입니다.
자기들은 행복한데 왜 주님께선 불행하다고 하시는지 모를 것입니다.
그래서 나도 그런 것은 아닌지 저는 이것을 보며 자문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행복한 것과 행복하다고 자기가 느끼는 것은 다를 수 있습니다.
저는 과거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불행한 사람은 자기가 행복한 줄 모르는 사람이다.
그러니 행복한 사람은 자기가 행복한 것을 아는 사람이고,
행복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만족할 줄 알고 행복한 줄 아는 것이다.
이 말은 여전히 맞는 말입니다.
사실 분명 행복한데도 행복한 줄도 만족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 참 많지요.
그리고 그것을 보며 우리는 얼마나 안타까워하고 그에 대해 가여워합니까?
그러므로 자기가 행복한 줄 아는 것은 분명히 행복할 자격이 있는 것인데
오늘 주님께서는 다른 차원에서 행복과 불행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거짓 행복에 만족하는 불행과,
지금 행복에 도취하는 불행과,
그래서 미래의 불행을 보지 못하는 불행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저는 행복합니다.
이는 저의 ‘무조건 행복론’ 때문이기도 한데 저의 행복론은 이렇습니다.
‘나는 지금 무조건 행복하다. 행복하지 않으면 나만 손해니까.’
행복에 조건이 없어야 한다는 행복론입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행복한 직접적 이유는 뮤지컬 때문입니다.
들어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뮤지컬에 대한 반응이 아주 뜨겁습니다.
그래서 왜 공연 횟수가 이렇게 적냐고 원망을 들을 정도이고,
프란치스칸만 아니라 일반 교구와 본당에서도 요청이 많아서
내년에는 공연 횟수를 아주 많이 늘려야 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인간적으로 흐뭇하고 행복한 것이 사실이고,
행복하지 않다거나 행복해선 안 된다고 할 수 없으며
당연히 저는 두루두루 감사해야 하고 행복해야겠지요.
그런데 이것이 하느님과 여러분과 출연진들 때문이 아니라
저의 성취감 때문이라면 저는 머지않아 불행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저에게도 하느님께서는 ‘레오나르도야, 너는 불행하다.’고 하실 겁니다.
칭찬 때문에 행복한 것은 비난 때문에 불행해질 것이고,
성취 때문에 행복한 것은 실패 때문에 불행해질 것이며,
인간 때문에 행복한 것은 인간 때문에 불행해질 것이고,
지금 행복한 것은 오래가지 않아서 불행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저의 전 인생을 보시며 행복하거나 불행하다거나 하실 것이고,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 때문에 행복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보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의 기쁨과 감사와 행복이 성령의 열매인지
오늘 바오로 사도의 말씀에도 비춰보는 오늘 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