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11,37-41
한 바리사이가 예수님을 식사에 초대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식사 전에 손을 씻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그는 깜짝 놀랍니다.
이 손 씻기는 위생이 아니라 ‘종교 예식’이었습니다.
손가락을 물에 잠깐 담갔다 빼는 정도의 형식이었지만,
그것을 지키지 않는 것은 큰 결례로 여겨졌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겉’ 이야기를
단숨에 ‘속’ 이야기로 되돌리십니다.
“너희는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
잔을 아무리 반들반들 닦아도,
그 안에 든 것이 더러우면 마시는 이는 병이 듭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이 오늘의 핵심입니다.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놀랍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마음을 깨끗이 하는 길로 제시하신 것은
더 엄격한 규정도, 더 긴 기도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자선(사랑의 실천)’이었습니다.
어째서일까요?
사람이 겉치레에 매달리는 까닭은,
속이 탐욕과 사악으로 차 있어 그것을 가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움켜쥔 것을 이웃에게 내어 주는 순간,
탐욕이 손에서 풀려나고 마음도 함께 열립니다.
사랑하면 형식에 매달릴 힘이 남지 않습니다.
성경도 오래전부터 노래해 왔습니다.
“자선은 사람을 죽음에서 구해 주고 모든 죄를 없애 준다”(토빗 12,9).
성 대 바실리오는 이 말씀을 온몸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굶주린 이들을 위해 거대한 자선 도시(바실리아스)를 세웠고,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그대의 곳간에 쌓인 빵은 굶주린 이의 것이고,
옷장의 외투는 헐벗은 이의 것’이라고.
자선은 내 것을 인심 쓰는 것이 아니라,
본디 그들의 것을 돌려주는 정의라는 것입니다.
친절·선행 주간의 눈으로 보면
여기서 놀라운 순환이 열립니다.
친절과 선행은 이웃만 살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나의 속’을 씻어 줍니다.
겉을 아무리 꾸며도 마음은 깨끗해지지 않지만,
한 번의 진실한 자선이 마음의 탐욕을 씻어 냅니다.
그러니 선행은 은총을 사는 값이 아니라,
은총이 흘러드는 통로입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겉(형식·평판)’을 닦느라 속을 방치하지 않는가?
내 마음의 잔 안에는 무엇이 담겨 있는가?
나는 움켜쥔 것을 ‘속에 담긴 것으로’ 내어 줄 수 있는가?
나의 선행은 겉치레인가, 속에서 흘러나온 사랑인가?
주님,
겉을 닦느라 속을 잊지 않게 하소서.
제 속에 담긴 것으로 이웃에게 자선을 베풀게 하시어,
그 사랑으로 저의 모든 것이 깨끗해지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