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연중 제28주일의 주제는 잔치인데 우리 인간사에서 잔치하면
대표적으로 생일잔치와 혼인 잔치 두 가지이고 오늘은 혼인 잔치 얘기입니다.
그런데 오늘 독서 이사야서에서 하느님은 어찌하여 잔치를 산 위에서 베푸시는지
그런 의문에서 오늘 묵상을 저는 시작합니다.
잔치하면 가능한 많은 사람이 참석하도록 교통이 편리한 곳에서
잔치를 열어야 마땅한데 하느님께서는 산 위에서 연다고 하시니
많은 사람이 참석하길 바라시는 것인지 의문이 가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 복음에서 임금님 아들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참석을 거부하는데
그것도 이것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혼인 잔치에 많은 사람이 참여하지 않는 것에
그 탓이 손님에게 있지 않고 주인에게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은 어쩌자고 산 위에서 혼인 잔치를 여는 것입니까?
그런데 그것은 하느님도 어쩔 수 없습니다.
하늘나라 혼인 잔치이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구약에서 산 위는 늘 하느님이 계신 곳이고,
그러니 산 위에서 혼인 잔치가 열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니 많은 사람이 혼인 잔치에 관심이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세속 사람들이 관심이 없는 하늘나라 잔치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속 사람들은 밭 가는 일과 장사하는 일에
온 관심이 있고 하늘나라 잔치는 전혀 관심사가 못 됩니다.
저희가 뮤지컬을 제작하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일 줄 몰랐는데
그런데 가만히 따져보면 부캉이를 보러 가는 사람 수에 비길 바가 못 되고
천만 명 이상 관람하는 영화와 비교하면 천지 차이입니다.
그리고 혼인 잔치는 세속 사람들이 관심 없는 하늘나라 잔치일 뿐 아니라
구원의 잔치이고 종말의 잔치이기에 더더욱 관심이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세속 사람들은 행복에 관심이 있지만 구원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이란 이런 세속 사람들과 달리
구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는 과연 어떤 사람들입니까?
이 세상 행복에 더 관심이 있는 사람입니까?
하느님 나라 구원에 더 관심이 있는 사람입니까?
첼라노의 성 프란치스코 전기에서 프란치스코는 오늘 복음의
마지막 말을 인용하며 형제들에게 이렇게 설교합니다.
“우리는 큰 것을 약속했고 우리에게는 더 큰 것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약속한 것을 지키고 약속된 것을 갈망합시다.
쾌락은 일시적이고 형벌은 끝이 없습니다.
고통은 짧고 영광은 영원합니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많지만 뽑힌 사람은 적습니다.
누구든지 자기의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이것에 비춰 볼 때 다시,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일시적인 쾌락을 즐기는 사람입니까?
약속된 구원을 갈망하는 사람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