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0,1–10
예수님은 오늘
양과 목자, 그리고 문의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양들은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그를 따라갑니다.
낯선 이의 목소리에는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분명히 선언하십니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또 말씀하십니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성 예로니모는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참된 목자의 음성을 분별하는 것이
영혼의 안전과 직결된다고 보았습니다.
많은 소리가 우리를 부르지만
모든 소리가 생명으로 이끄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소리는 우리를 흩어지게 하고,
어떤 소리는 욕심과 두려움 안에 가두며,
어떤 소리는 겉으로는 달콤하지만
안으로는 생명을 메마르게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목소리는
언제나 생명과 진리와 사랑의 방향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단지 우리를 돌보시는 분만이 아니라
우리가 지나가야 할 문이십니다.
이 말씀은 매우 깊습니다.
문은 안과 밖을 가르고,
위험과 안식을 구분하며,
흩어짐과 머묾 사이에 서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막는 닫힌 문이 아니라
생명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열린 문이십니다.
그 문을 통과한다는 것은
주님을 믿고
그분의 마음과 방식 안으로 들어가는 일입니다.
사랑/기쁨 주간에
이 말씀은 더욱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사랑은
누군가를 내 바깥에 세워 두는 태도가 아니라
그 사람이 생명 안으로 들어오도록 문이 되어 주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런 사랑을 보여 주십니다.
배제하지 않고,
상처 입은 이를 밀어내지 않으며,
길 잃은 이를 맞아들이는 문,
그것이 주님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기쁨은
그 문 안에서 비로소 안전하게 숨 쉬는 생명의 충만함입니다.
기쁨은 소란스러운 흥분이 아니라
“나는 버려지지 않았다. 나는 주님 안에 있다.”
하는 깊은 안심에서 자랍니다.
오늘 우리는 묻습니다.
나는 누구의 목소리를 따라가고 있는가?
주님의 목소리인가,
세상의 불안과 비교와 경쟁의 목소리인가?
나는 다른 이에게 어떤 문이 되고 있는가?
닫힌 문인가,
판단의 문인가,
아니면 주님처럼 생명으로 들어가게 하는 문인가?
주님께서 주시는 사랑은
상대를 조종하는 사랑이 아니라
살게 하는 사랑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은
잠깐 들뜨게 하는 만족이 아니라
양 떼가 목자 곁에서 누리는 깊은 평안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은 우리를
사랑의 넓이와 기쁨의 깊이로 초대합니다.
주님,
제가 낯선 소리에 끌려가지 않게 하시고
참된 목자이신 당신의 목소리를 알아듣게 하소서.
닫힌 마음이 아니라
생명을 맞아들이는 문이 되게 하시고,
당신 안에서
사랑과 기쁨의 충만한 생명을 살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