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6,35–40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주님은 군중의 기대를 맞추는 방식으로
당신을 설명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당신 자신이
사람의 가장 깊은 허기와 목마름을 채우는
참된 생명의 근원이심을 드러내십니다.
이 말씀은 위로이면서 동시에 초대입니다.
배고픔과 목마름이 사라진다는 것은
삶의 문제가 하나도 없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 존재의 뿌리가
더 이상 세상의 불안정한 것들에 매이지 않고
주님 안에 놓이게 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잠시 허기를 잊게 하는 빵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는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십니다.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방식이
단순한 외적 도움에 그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멀리서 우리를 지켜보기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삶 안으로 들어오셔서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짊어지시고
당신 생명에 참여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레고리오에게 그리스도는
인간을 바깥에서 고쳐 주는 분이 아니라
안에서부터 새롭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교리를 아는 데 멈추지 않고
생명의 빵이신 주님을 받아들여
내 존재의 중심을 바꾸는 일이 됩니다.
오늘 복음은 평화/인내 주간에 특별한 빛을 줍니다.
평화는
내 삶이 원하는 대로 잘 풀릴 때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의 빵이신 주님께서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붙드신다는 믿음에서 옵니다.
인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내는 혼자 버티는 힘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생명에 의지하여
오늘을 다시 살아가는 힘입니다.
특히 오늘 함께 읽는 루카 복음에서는
주님을 따르는 일이 가볍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주님을 따르려면
삶의 중심이 바뀌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단지 삶의 한 부분이 아니라
삶 전체를 새롭게 정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생명의 빵이다”라는 말씀은
달콤한 위로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정말 나를 생명의 중심으로 모시고 있는가?
너의 배고픔을 채우는 것이
성과인가, 인정인가, 소유인가,
아니면 나 자신인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의 통찰처럼
주님은 우리를 반쯤만 살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전인격을 구원하시고,
전 존재를 생명 안으로 이끄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믿음도
부분적인 위안이 아니라
전 존재의 응답이어야 합니다.
주님께 가는 사람은 굶주리지 않습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은 목마르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결코 버리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
헛된 것을 생명의 빵처럼 붙드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당신께 저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기게 하소서.
평화와 인내 안에서
당신께서 저를 끝까지 붙드신다는 믿음으로
오늘을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