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주님의 행복 선언이지만
저는 어떤 사람이 불행한지를 보고자 합니다.
제 생각에 불행한 사람은 자기가 행복한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행복한 줄 모르는 사람은 행복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왜냐면 행복한 줄 모르는 것은 행복 욕심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가 바람을 쐬고 있으면 그것이 행복인데 그것을 모르고,
지금 내가 잘 먹고 변을 잘 보면 그게 행복인데 그것을 모르고,
지금 나와 함께 사는 사람이 좋은 사람인 것을 알면 행복할 텐데 그걸 모르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 계속 있으면 그게 행복인데 그게 행복인 줄 모르고,
지금 내가 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으면 그게 행복인데 그게 행복인 줄 모르고,
아무튼 지금 내게 있는 행복들을 보지 못하기에 불행인데 그걸 모르는 겁니다.
그리고 행복한 줄 모르는 사람은 행복할 줄도 모릅니다.
행복 비결을 모르기 때문에 행복한 줄도 행복할 줄도 모르는 것입니다.
행복 비결은 무조건 행복한 것이고,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신 행복 선언도 바로 이 행복 비결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행복 비결은 딱 한 가지 조건만 채우면,
곧 하느님 나라를 소유하는 조건만 채우면 행복할 수 있고
그래서 나머지 조건은 행복의 조건이 되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햇빛 한 줌만 있어도 행복할 수 있는 가난이 있다면
또 그것이 하느님 나라를 소유했기 때문이라면 다른 조건들은 조건이 아닙니다.
다음으로 불행한 줄 모르는 불행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복음의 다른 곳에서 너희는 불행하다는 불행 선언도 주님께서 하셨습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 너희는 굶주리게 될 것이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
불행한 줄 모른다는 것은 자기가 행복한 줄 안다는 것이고,
지금 행복하기에 미래에 불행하게 될 걸 대비치 않는 불행이며,
지금의 행복에 취해 영원한 불행에 대해서는 생각지 않는 불행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의 행복에 안주합니다.
회개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릅니다.
칭찬에 귀가 먹은 행복이 불행인 줄 모릅니다.
영원을 생각지 않는 행복이 불행인 줄 모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여덟 행복을 말씀하시면서
‘지금 여기서’의 행복도 말씀하시고
종말론적인 행복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공통점은 하느님 나라의 행복입니다.
그 행복을 앞당겨도 살고 영원히도 사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