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녕 내 백성이 두 가지 악행을 저질렀다.
그들은 생수의 원천인 나를 저버렸고
제 자신을 위해 저수 동굴을, 물이 고이지 못하는 갈라진 저수 동굴을 팠다.”
오늘 독서 예레미야서는 이스라엘이 두 가지 악행을 저질렀다고 하는데
제 생각에 그리고 불교에서 그것은 악행이 아니라 어리석음입니다.
악행이란 남에게 악을 저지르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통이고,
자기에게 저지르는 것은 보통 악행이라고 하기보다는 어리석음이라고 하잖습니까?
그런데 오늘 예레미야서는 ‘제 자신을 위해’ 저수 동굴을 잘못 팠다고 하잖습니까?
사실 갈라진 저수 동굴을 파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것은 깨진 항아리에 물을 긷는 것과 같은 헛짓이고 그래서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런데 본인은 그것을 모르지요.
자기의 저수 동굴이 갈라졌다는 것을.
그런데 내 저수 동굴은 갈라져 있습니다.
내 은행 통장에서 돈이 솔솔 빠져나가고,
혹 돈은 빠져나가지 않더라도 내게서 생명이 빠져나갑니다.
그런데 이것은 자기 어리석음이라고 할 수 있지만
생수의 원천인 당신을 저버린 것은 죄요 악행이라고 오늘 하느님은 말씀하십니다.
사실 이 죄를 범하고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은
하느님이 생수의 원천이라는 것을 거부하지요.
하느님이 생수의 원천이라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곧 하느님을 저버리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는 뭘 말하는 것입니까?
이는 하느님께서 은총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부정하고,
그래서 하느님이 주시는 은총을 우리가 거부하는 것이요,
그것이 곧 하느님을 저버리는 죄요 악행이라는 말입니다.
이는 탈렌트의 비유에서 한 탈렌트 받은 악한 자가
주인을 주지도 않고 뺏어가는 모진 분으로 알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을 주지도 않고 뺏어가는 악덕 사업가라고 알고 있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도 어떻게 믿고 있는지 자문합니다.
하느님은 은총의 샘입니까?
악덕 사업가이십니까?
그리고 나는 하느님 은총을 허비하지 않는 크고도 훌륭한 은총의 그릇입니까?
깨진 바가지이거나 온전하다 하더라도 은총의 작은 바가지입니까?
내 은총의 바가지는 무사합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