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를 보시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예수님 당시에 사람들은 병을 죄의 결과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요한복음 9장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병을 죄의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으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중풍 병자에게 죄의 용서를 말씀하시는 것은
중풍 병자의 눈높이에 맞추시기 위한 행동으로 보입니다.
그는 자신의 병에 고통스러워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죄인이라는 죄책감 속에서 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죄책감도 벗겨주시면서
그의 병을 치유해 주시기 위해서
죄의 용서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그 말씀이
율법 학자들 귀에는 거슬리는 표현이었습니다.
하느님 말고 죄를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예수님의 용서는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사람의 아들로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시지만
예수님을 사람의 아들로 생각하지 않는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의 말과 행동을 그저 신성 모독으로만 볼 뿐입니다.
신성 모독으로 보일 수 있는 부분이 있어도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굽히지 않으십니다.
그렇게 죄를 용서받은 중풍 병자를
일상의 삶으로 돌려보내십니다.
반대를 받는 상황이 예상되어도
심지어 신성 모독으로
죽음의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죄의 용서를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지금 고통스러워하는 그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주시기 위한 마음에서 옵니다.
그가 몸의 치유만이 아니라
마음의 치유도 필요했기에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신경쓰시기에 앞서
그에게 집중하십니다.
이것은 중풍 병자에 대한 온전한 사랑이며
그 사랑은 죽음의 위협을 무릅쓸 정도로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사랑입니다.
우리도 그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중풍 병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가고자
어떠한 난관도 뚫고 나아간 사람들의 모습처럼
우리도 하느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그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 다가가서
그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오늘 하루가 되기를 기도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