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성탄 대축일 전야 미사의 입당송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오늘 너희는 우리를 구원하러 오시는 분이 주님이심을 알게 되리라.”
그래서 구원이 무엇일까? 반대로 비 구원은 무엇일까? 생각해봤습니다.
제 생각에 비 구원은 하느님께서 안 계신 겁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아이에게는 엄마가 없는 것 자체가 비 구원이고,
가장 쓰라린 비 구원이며 비 구원의 종합입니다.
엄마가 안 계시기에 아이는 외롭고,
엄마가 안 계시기에 마음이 어두우며,
엄마가 안 계시기에 아이는 배고프고,
엄마가 안 계시기에 아이는 불안하며,
엄마가 안 계시기에 무섭고 두려우며
엄마가 있는 아이는 활기차고 의기양양한데
엄마가 안 계시기에 아이는 시들시들합니다.
여기서 외롭고 어둡고 배고픈 것은 비 구원의 현상들이고,
엄마가 안 계신 것은 비 구원의 원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비 구원을 얘기할 때 현상을 얘기하지만
원인인 엄마가 안 계신 그 비 구원을 더 얘기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이가 굶는 것에 관해서만 얘기할 뿐
엄마가 없는 것에 더 초점을 두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 신앙인에게 적용하면 이렇게 되겠습니다.
우리가 불안하다면 하느님께서 안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안 계시기에 불안하다고 믿어야 신앙인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안 계시기에 불안한데
식량이 떨어져 가기에 불안하다고 생각하면 신앙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지독히도 고독한 비 구원 상태에 내가 있는데
하느님께서 안 계셔서 고독한 것이 아니라
내 곁에 아무도 없어서 고독하다고 하면 신앙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너무도 행복하게도 우리 신앙인에겐 임마누엘 하느님께서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기 전에 주님의 천사는 요셉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렇게 구원자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그분을 구원자로 맞이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죄이고 그것이 비 구원입니다.
이것을 오늘 요한복음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이 죄에서 구원된 사람입니까?
이 죄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사람입니까?
임마누엘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래서 구원 받은 저이고 여러분입니다.
이 구원의 기쁨을 서로 나누며 자축합시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