즈카르야는 요한이 태어나는 것을 보면서
하느님의 약속이 이루어진 것을 체험합니다.
약속의 정점은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오는 것이지만
요한은 그 메시아의 마지막 예언자로서
요한이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은
곧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올 것임을 실감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약속을 잊지 않고 이루어주시는 것을
즈카르야는 하느님의 자비라고 표현합니다.
하느님께서 잊으신 것처럼 보이지만
하느님께서 우리를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버려두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
하느님께서는 항상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고
우리에게 빛을 비추어 주려 하신다는 것이
즈카르야가 경험한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인간적인 마음에 내 아들이 메시아이기를 원할 수도 있지만
즈카르야에게 그것은 중요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자기 아들이 메시아가 아니라
메시아의 마지막 예언자일지라도
자신이 자비를 경험하고
구원을 얻는 것에는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약속은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됩니다.
즉 즈카르야가 기다려온 하느님의 약속은
자신이 혹은 자기 아들이 메시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더 나아가 이 세상이
구원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에서 자신이 제외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아들의 탄생을 보면서
하느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우리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아기의 모습으로
당신을 안아주기를 기다리시는 하느님께서는
똑같이 우리를 아기를 대하듯 안아주실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어둠을 탓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어둠에 빛을 비춰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그 약속이 곧 이루어질 것을 즈카르야는 예언합니다.
우리도 그와 함께 기뻐하고
그와 함께 희망을 꿈꾸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를 향해 오는 하느님의 사랑
나에게 베푸시는 하느님의 자비이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