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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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는 성령으로 가득 차 이렇게 예언하였다.(루카 1,67)
즈카르야의 예언은 찬미가다
믿음·경건·기도·단식·인내·정결·찬미 노래 등, 구약성경의 영적인 것들이 모두 신약성경에서 줄어들지 않고 더욱 고조되었습니다. 우리가 복음서에서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가 오랜 침묵을 깨고 찬미가 형식으로 예언하는 것을 보는 것도 그런 까닭입니다.
-레메시아나의 니케타스-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셋째 오솔길】
돌파하여 자기 하느님을 낳기
설교 26
성령은 빠르게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를 신화시킨다
강물의 줄기들이 하느님의 도성을, 지존의 거룩한 처소를 즐겁게 한다(시편 46,4).
“은총으로 마음을 튼튼하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히브 13,9)라고 바울로는 말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다음 세 가지에 유의해야 합니다. 첫째, 우리는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까요? 마음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무엇과 함께 시작해야 할까요? 은총과 함께 시작해야 합니다. 셋째, 왜 그래야 합니까? 선하게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마음은 몸의 가장 고귀한 지체입니다. 마음은 몸 한가운데 있으면서, 몸 전체에 생명을 주는데, 이는 마음에서 생명의 샘이 솟아올라 하늘처럼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은 끊임없이 운행합니다. 따라서 하늘이 더 빠르게 운행하기 위해서는 둥굴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모든 피조물에게 존재와 생명을 줄 수 있으니까요. 하늘이 잠깐이라도 멈추어 버린다면, 사람이 불을 붙잡아도 불이 손을 사르지 못할 것이고, 물은 흐르지 않을 것이며, 모든 피조물도 힘을 잃고 말 것입니다. 실로 영혼과 하늘이 없다면, 모든 피조물은 마치 태어나지도 않았다는 듯이 완전히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이러한 능력은 하늘 자체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늘을 운행시키는 천사에게서 온 것입니다.(532)
<금주간 성서읽기> 묵시 7-14장
<생태 문화 주간> 음악/미술/독서 등. 생태 품앗이
세계 교회사, 아우구스트 프란츤
제1기: 1500~1700년
종교개혁과 가톨릭 개혁
제 3절: 마르틴 루터, 종교개혁가로의 발전
교회와의 절교:
그동안 논쟁점이 바뀌었다. 문제는 이미 대사논쟁이 아니고 교회에 대한 공격이었다. 그 책임은 에크에게 있었을까? 루터를 교회문제에 대해 집착하게 한 것이, 마치 에크 혼자서 그렇게 한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실제로 그는 처음으로 이 문제를 인식하고, 그의 특유한 신학적인 명민함으로 그것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제기된 이 문제가 벌써 오래전부터 루터의 내적인 발전 노선에 놓여 있던 사실을 위에서 보았다. 그는 아마 자신의 새로운 신앙 이해에서부터 그의 길이 교회에서 이탈하는 것임에 확신을 가지고 스스로 도달하였을 것이다. 에크는 다만 그에게 그의 이러한 상태를 더 분명하게 의식시켰을 뿐이다.
실제로 루터는 라이프치히 종교 토론회 이후 그의 교회 개념을 처음으로 더 예리하게 숙고하였다. 그때 그에게 직접적이고 완전히 주관적으로 파악된 그리스도에 대한 신뢰적 헌신에 근거한 그의 신앙체험은, 그 어떤 중재자를 위한 여지가 이미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돌연 그에게 성사와 종교적 • 교회적인 생활 전체가, 심지어 하느님께로 가는 길에 장애처럼 생각되었다. 그는 그것들을 인간이 더이상 은총에 기회를 주려 하지 않고 자신의 영원한 구원을 스스로 획득하려고 노력하는 “선업의 의화”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하느님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고, 그래서 악마의 행위일 수밖에 없다. 이미 따 의심을 품고 있던 가시적이고 제도적인 교회 전체는. 이제 그에게 악마의 행위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교황은 인간을 오류로 인도하는 그리스도의 악한 원수인 반그리스도이고, 또한 교황은 그리스도 대신 자신을 내세웠고 그래서 하느님의 분노를 사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러한 관념이 오래 지속되면 될수록 강화되어 그에게서 이미 극복될 수 없는 장애가 되어버렸다. 교황은 그에게 언제나 반그리스도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파문 위협 칙서에 대한 그의 격렬하게 분노한 반응을 1520년의 그의 종교개혁적 3대 주요 저서에서 파악한다. 여기서 그는 교황권과 기존의 교회 전체를, 그 모든 오류와 결점과 함께 방약무인하게 공격하고 또한 이미 개혁이나 내적 치유만이 아니고 교황권과 교회에 대한 투쟁도 외쳤다. 루터의 3대 개혁서는 이렇다.
1) 「그리스도교적 상태의 개선에 관하여 독일 국가의 그리스도교 귀족들에게 고함」
2) 「교회 의 바벌론 유배에 대하여」
3)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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