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들은 주님의 계약 궤를 집의 안쪽 성소인 지성소에 들여다 놓았다.
사제들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주님의 집을 가득 채웠다.”
오늘 열왕기는 아버지 다윗이 지으려던 성전을 아들 솔로몬이 짓고서
온 백성과 사제와 함께 하느님께 봉헌하는 얘기입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렸듯이 아버지 다윗이 성전을 짓겠다고 할 때 하느님은
집을 짓지 말고 집안을 하느님의 집안으로 만들라고 하며 만류하셨는데
아들 솔로몬에게는 성전을 지어 바치는 것을 이제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주에 성전 건물인 집을 짓는 것보다
하느님 공동체인 집안을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는데
오늘 지성소를 내 안에 그리고 우리 안에 세우는 것에 대해 보고자 합니다.
저는 일생 성체가 모셔져 있는 수도원에서 살았는데
그런 제가 지난 7년여는 성당이 없는 수도원
곧 성체가 모셔져 있지 않은 수도원에서 살았습니다.
그렇기에 성체를 통한 주님과의 만남은 미사 때만 가능했고,
기도와 미사도 성당이 아니라 거실에서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일당을 받는 막노동을 했고,
다른 형제는 버스 운전을 밤과 낮 번갈아 했기에
기도와 미사 시간도 일정하지 않았고 혼자 미사 드릴 때는
새벽 서너 시에 저 혼자서 미사를 봉헌할 때도 많았습니다.
이렇게 장소와 시간이 불규칙하기에 불안정하기도 하고,
성당에서 거룩하게 미사 드리고 성체조배도 하고 싶은 적도 많았지만
이때 제가 터득한 것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주님을 만나는 법이었습니다.
토마스 첼라노가 프란치스코의 전기를 쓰면서 프란치스코의 기도에 대해 전해주길
성당도 고요한 곳도 없을 때 그는 가슴에 성전을 마련하고 기도했다고 하는데
감히 말하자면 저도 그렇게 기도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솔로몬은 계약의 궤를 성 밖이 아닌 시온성까지 곧 다윗성까지 모셔 오고,
다윗성으로 모셔 온 뒤에는 성전 안으로 모셔 들이고,
성전 안에서도 지성소를 마련하여 그곳에 모십니다.
이렇게 지성소에 모시기까지 솔로몬의 지극한 정성을 보면서
저도 주님을 제 안의 지성소까지 모셔야 한다는 자극을 받습니다.
제 몸과 마음 밖의 성전이나 지성소가 아니라
내 안의 안에 성전과 지성소를,
내 마음 안의 속마음에 지성소를 짓고 거기에 모셔야겠다는 자극 말입니다.
성전 안에 내가 머무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내 안에 지성소를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