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사도행전은 박해 때문에 흩어진 신자들이 안티오키아까지 갔지만
“유다인들에게만 말씀을 전하였다.”라고 전합니다.
이것은 제가 중국 선교하러 가서 한족에게는 복음을 전하지 않고
조선족에게만 복음을 전하는 것과 같은 것일 겁니다.
그것도 복음 선포이긴 하지요.
그러나 초대교회와 사도들이 유다인에게만 복음을 전하였다면
우리 교회가 그리스도교가 되지 못하고 유다교 내지 유다교의
한 종파로 남았을 것이고 가톨릭교회도 있을 수 없었을 겁니다.
가톨릭(Catholic)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이렇습니다.
‘보편적인, 모든 것을 포함하는, 만인에 이르는’
‘치우치지 않는, 편협하지 않은; [사람이] 도량이 넓은, 포용력이 있는’
한마디로 우리가 사도신경에서 고백하는 바로 그 내용이지요.
우리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보편된 교회를 믿으며”라고 고백하잖습니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우리 교회 역사를 생각해봅니다.
어제 사도행전에서 베드로 사도가 할례받은 유다인의 공격을 받고,
유다인을 대상으로 하는 복음 선포로만 움츠러들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오늘 사도행전에서 일부 신자들은 유다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했을 때
다른 일부 신자들이 그리스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일이 없었다면
우리 교회 역사는 지금처럼 가톨릭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쨌거나 오늘 사도행전에서 우리 교회가 안티오키아에서 처음으로
유다교, 유다인에게서 떨어져나와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는데,
이름 없는 일부 신자들이 그리스인들에게 복음을 선포치 않았다면
예루살렘 교회가 바르나바 사도를 파견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바르나바가 사울을 데리고 온 것과 같은 결정적인 사건도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이 얘기를 길게 한 이유는 바르나바나 바오로 같은 대 사도도 있어야겠지만
이름 없는 신자들처럼 소 사도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얘기하기 위한 것이고,
내가 받은 복음과 신앙을 나만 소유치 않고 이웃과 나누려는 선교사 의식을
가진다면 대 사도만 사도가 아니고 소 사도인 우리도 사도임을 강조하려는 거지요.
우리 모두 작은 사도들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