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내 말을 듣고 있는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해 주며,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원수를 사랑하라는 오늘 말씀은 어제 불행 선언 다음에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래서일까 ‘그러나’로 말씀을 다시 시작하시고
당신 말을 듣고 있는 너희에게 말씀하신다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오늘 원수를 사랑하라는 엄청난 말씀은 어제 불행 선언을 들은,
그런 사람들과 달리 당신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에게 말씀하시는 것이고,
이 엄청난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들과 달리 행복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사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이 엄청난 말은 아무나 듣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말씀을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차버리며
들으려고도 하지 않거나 듣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말씀을 누가 듣고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시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하지 않고 듣고 있는 것이고,
주님 말씀이니 분명 나의 행복을 위해 하시는 말씀이라고 믿는 사람이 들을 것이고
행복 의지가 있는 사람이 주님이 말씀하신 원수 사랑의 의지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원수 사랑하라는 말씀은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나의 행복을 위해 하시는 말씀,
다시 말해서 원수의 행복이 아니라 나의 행복을 위하여 하시는 말씀이고,
하느님 자녀들이 원수지간으로 불행하게 살지 말고 모두 행복하게 살라는 겁니다.
문제는 주님의 사랑을 믿고 우리가 원수를 사랑하려고 할지라도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그 사랑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 그것이고,
원수 사랑의 의지만으로 원수 사랑이 가능하겠느냐 그 말입니다.
당장은 불가능하고
우리의 의지적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하고,
그래서 주님께서는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원수 사랑하려는 사람에게 주님께서 그 사랑의 능력을 주시고,
원수 사랑하려고 기도하는 사람에게 그 사랑의 힘을 주십니다.
우리가 모두 행복하길 바라시는 하느님께서는
기도하는 나에게는 당신 사랑이 내 안에 차오르게 하시고,
원수에겐 당신 사랑과 나의 사랑에 반응하게 하실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계속 기도하면 원수가 벗으로 바뀌게 해주십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형제들이여,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주어라.’
하신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시다.
우리가 발자취를 따라야 할 주님께서 당신을 넘겨준 사람을 벗이라고 부르셨기에
우리에게 부당하게 번민과 괴로움, 부끄러움과 모욕, 고통과 학대,
순교와 죽음을 당하게 하는 모든 이들이 바로 우리의 벗들입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끼치는 그것들로 말미암아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기에
우리는 그들을 극진히 사랑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