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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

 

이미 위로를 받았기에 불행하다는 오늘 루카 복음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라는

마태오 복음처럼 말씀하시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루카 복음은 마태오 복음과 달리 왜 듣기 거북한 불행 선언도 하셨을까요?

이 말씀이 불행해지라는 저주가 아니니 듣기 싫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행복 선언보다 듣기 싫은 것은 사실이잖습니까?

사실 우리는 불행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조차 듣기 싫어하고 두려워하잖습니까?

 

그런데 불행을 직면하지 않으면 진정 행복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불행을 직면하지 않으면 불행의 문제만 직면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행복의 문제도 직면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적당히 불행하지 않은 것으로 행복하다고 강변하고,

실은 불행한데도 불행하지 않다고 강변하기 일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요즘은 소확행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거짓 행복에 안주합니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의 소확행이 행복 욕심의 측면에서는 맞는 말입니다.

사실 우리 인간의 가장 큰 욕심은 행복 욕심입니다.

 

돈 욕심이 가장 큰 것 같아도 그것이 실은 행복 욕심의 하나일 뿐이고,

행복 욕심은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상태를 욕심내는 것이기에 더 크며,

웬만한 행복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욕심이기에 제일 큰 욕심입니다.

 

그러므로 이 욕심의 차원에서는 작은 행복으로도 만족할 줄 아는 것이

지혜롭고 행복의 길이지만 행복 추구의 차원에서는

특히 천국의 행복을 추구하는 차원에서 소확행은 얼치기 행복에

안주케 하는 거짓 행복일 뿐입니다.

 

아무튼 우리 인간은 불행을 입에 올리면 불행해질까 봐 얘기하지 않으려는데

루카 복음은 이런 우리의 소극적 자세를 정면으로 깨기 위해

불행 선언을 굳이 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이미 위로를 받는 것이 불행하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저는 고독사에 대한 뉴스를 볼 때마다 저의 고독사에 대해서도 생각합니다.

죽을 때 정말 아무도 없더라도 나는 평화롭게 또 행복하게 죽을 수 있을까?

 

오늘 위로를 이미 받은 사람은 불행하다는 말씀을 묵상하면서도

저의 고독사에 대한 생각을 다시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위로 없이도 나는 평화롭고 또 행복하게 죽을 수 있을까?

아니 지금 이미 하느님의 위로만으로도 나는 충분하게 행복한가?

 

솔직히 저를 들여다보면 저의 행복은 인간의 위로에 많이 의존하고 있기에,

아무도 없고 아무 위로도 없이 나 혼자 죽을까 봐 많이 두려워하고 있으며

그래서 상상 임신을 하듯 지금부터 저의 고독사를 자주 상상하고는 합니다.

 

말하자면 이렇게 고독사를 대비하는 것이며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위로를 이미 받은 사람의 불행을 생각하며

지금부터 하느님의 위로만으로도 행복한 저로 살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위로를 지금 받지 못할 때 위로해 주지 않는다고 탓하기보다

하느님의 위로만으로 충분히 행복한 나로 발돋움할 기회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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