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는 종이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
오늘 복음은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에 관한 비유인데
루카 복음에서는 종 중에서도 집사에 관한 비유입니다.
그러니까 종 중에서도 주인을 대신해 주인집의 재산과 종들을 관리하는 종입니다.
그러니까 일반 종이라면 주인에게 충실하기만 하면 되지만
관리자인 집사는 충실하기도 하고 슬기롭기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에 관해서 복음도 얘기합니다.
먼저 충실함에 관해서 보겠습니다.
충실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주인에게 충실한 것인데 오늘 복음을 보면
주인의 식솔들 곧 다른 종들을 잘 관리하는 것이고 그러므로
불충실한 종은 술꾼들과 어울리기만 하고 다른 종들을 폭행하는 종입니다.
효도는 부모에게 용돈과 보약을 잘해 드리는 것도 효도하는 것이겠지만
부모가 사랑하는 다른 형제들에게 잘해주는 것이 효도인 것과 같습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부모에게 제일 불효하는 것은 부모에게 용돈과 보약을 안 해 드리는 것이 아니라
형제들과의 사이가 좋지 않고 혼자서 부모의 유산을 다 차지하려는 것이잖습니까?
사랑으로 치면 부모도 사랑하고 형제도 사랑하는 것이 효도인 것과 같고,
하느님을 만유 위에 사랑할 뿐 아니라 이웃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겁니다.
이것이 주인이신 하느님께 충실하면서도 지혜로운 종의 처신입니다.
그런데 충실하면서도 지혜로운 것을 이런 측면에서도 볼 수 있지만
저는 오늘 다른 측면에서도 보고 싶습니다.
슬기로운 종은 충실하기만 하지 않고 행복도 해야 합니다.
주인을 위해서 죽으라고 일만 하고 자기는 행복하지 않으면 미련한 것입니다.
아주 이기주의적으로 얘기하면 주인에게 충실한 것도 다
나의 행복을 위해서 그러는 것이지 그럴 수 없다면 굳이 충실할 필요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오늘 비유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제가 사랑 까닭에 돈을 누구에게 주거나 맡긴다면
첫째는 그 돈을 낭비하거나 허비하지 않는 사람에게,
둘째는 그 돈을 자기의 행복을 위해 쓸 줄 아는 사람에게
셋째는 그 돈을 공동선을 위해 쓸 수 있는 사람에게 주거나 맡길 것입니다.
분명 그러할 것입니다.
저는 제 알량한 사랑으로 준 돈도 낭비되는 것이 싫고
그의 행복에 꼭 이바지하기를 바라는데
사랑이 더 많으신 하느님께서는 더 그러하실 것이고,
하찮은 돈도 그리한다면 귀한 은총과 사랑은 더더욱 그리하실 겁니다.
그래서 오늘 코린토서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어느 모로나 풍요로워졌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풍요로워져야 합니다.
그분의 사랑이 풍요롭지 않은 게 아니지 않습니까?
넘치도록 부어 주시지 않습니까?
넘치도록 부어 주시는 사랑인데
나를 풍요롭게 하지도 못하고
넘쳐서 이웃에게 가지 않는다면
아전인수(我田引水)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도랑의 물이 콸콸 흘러가는데 내 논에 물을 끌어들이지 않는다면
그래서 내 논도 적시지 못하고 옆 논으로 흘러넘치지도 않는다면
우리는 얼마나 불충실하고 얼마나 불행하고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어제 23장에서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에게는 그렇게 불행하다고 하신
주님께서 오늘 24장에서는 제자들에게 행복에 관해 말씀하시는데 이는
우리가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와 달리 당신의 행복한 제자 되라는 뜻이겠습니다.
충실함과 슬기로움으로 아전인수를 잘하는 풍요롭고 행복한 제자들이 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