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축일의 주인공인 바르톨로메오/나타나엘은
예수님에 관해 편견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이것은 그도 본래는 다른 율법 학자들과 마찬가지였다는 표시입니다.
그 당시 율법 학자들은 나자렛에서 메시아가 나올 리 없다고 믿었고,
지금도 많은 유대인은 이렇게 믿고 있기에 계속 유대교를 믿고,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그가 주님의 제자가 되었던 것은
다른 율법 학자들과 달랐기 때문이고
그래서 오늘 주님도 그를 이렇게 칭찬합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주님께서 나타나엘이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하고,
거짓이 없기 때문이라는 뜻으로 말씀하시는데
이 말씀이 제게는 인정할 것은 솔직히 인정할 줄 안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우리 가운데 똥고집 부리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잖습니까?
한번 자기가 내뱉은 말이 틀린 줄 나중에 알면서도 끝까지 고집하는 것 말입니다.
그러나 나타나엘은 나자렛에서 메시아가 나올 리 없다고 말했지만
즉시 자기 말이 잘못되었다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것이요,
과오를 인정함으로써 새로운 미래에 열려있는 것이고,
자기를 고집하지 않음으로써 하늘에 열려있는 겁니다.
과오(過誤)란 풀어 말하면 과거의 오류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오류를 인정치 않고 계속 고집하면
그것은 과거의 연장일 뿐 아니라 오류의 연장입니다.
어쨌거나 나타나엘은 과거를 고집하지 않았기에 새로운 미래에 열려있었고,
자기를 고집지 않았기에 하느님께 열려있었으며 새 하늘과 새 땅을 볼 수 있었지요.
그런데 우리도 나타나엘을 본받으려면 알아야 합니다.
과오를 미래에 되풀이하지 않고 하늘에 열려있으려면
나타나엘처럼 과오를 즉시 그리고 겸손히 인정해야 함을 말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우리에게는 이것이 어려운 것이고,
옛날의 자기 생각과 믿음이 계속 옳다고 하는 건데
이것을 똥고집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똥고집이라는 말이 있음은 좋은 고집도 있다는 말인데 이 축일을 기해서
나타나엘처럼 똥고집은 버리고 좋은 고집을 지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