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사랑이 첫째가는 계명 곧 제일 중요한 계명이라는 것에
머리로는 이의가 있는 분이 여러분 가운데 없을 것이고,
그래서 여러분 모두 사랑하려고 무진 애를 쓰실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저는 생각하고,
그래서 오늘은 이에 대해서 좀 길게 나누려고 합니다.
프란치스코가 지었다고 얘기되는 평화의 기도에서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고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를 사람들이 좋아하고 그리하려고 애쓰는데
저는 오늘 사랑하는 것보다 사랑받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입니다.
왜냐면 우리는 사랑을 잘 받아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랑의 샘이 나에게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랑의 샘은 없고 사랑의 저장고는 있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사랑의 샘이 없다는 것을 겸손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 우리는 내 사랑이 있는 줄 알고 헛심 쓰다 지치거나
사랑하고서는 보답적인 사랑을 요구하게 되고,
사랑의 보답이 없을 때 사랑이 미움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제넘게 사랑하려고 하지 말고,
겸손하게 사랑 없음을 인정할 뿐 아니라
겸손하게 사랑을 잘 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겸손하게 사랑을 잘 받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이웃의 작은 사랑도 감지덕지하는 것이고,
마치 쌀 한 톨도 허투루 흘려버리지 않는 것처럼
그 사랑을 소중히 여겨 작은 사랑도 큰 사랑으로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반대의 경우를 보면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애인의 작은 사랑은 큰 사랑으로 받아들이면서
엄마의 큰 사랑은 당연한 것 또는 하찮은 것으로 여겨
자기가 큰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사랑은 엄마의 사랑보다 훨씬 큰 사랑이지요.
사실 사랑은 큰 사랑일수록 느끼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는 것마다 다 사랑이기 때문인데 뒤집으면 작은 사랑은 드문 사랑이 되겠지요.
어쨌거나 사랑을 잘 받는 사람은
작은 사랑도 큰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며
큰 사랑이든 작은 사랑이든 흘려버리지 않는 사람이며
그리하여 사랑의 샘은 없어도 저장고가 큰 사람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