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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기도 2 팔을 벌리시는 하느님과 포옹의 사랑

가난은 팔을 벌리는 일입니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가슴 앞에 단단히 포개었던 두 팔을 천천히 펼쳐, 다른 이가 내 삶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 주는 일입니다. 팔을 벌리는 것은 내가 나 자신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는 표시이며, 나와 다른 존재를 갈망한다는 몸의 기도입니다.

 

나는 당신을 내 방식으로 바꾸지 않겠습니다. 나는 당신을 이해한다는 이름으로 내 생각 안에 가두지 않겠습니다. 나는 당신의 신비를 남겨 두고, 당신이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존중하며, 당신이 나에게로 오는 만큼 나도 당신에게로 걸어가겠습니다. 이것이 포옹이며, 이것이 가난이며, 이것이 관계 안에서 드러나는 하느님 사랑의 형상입니다. 참된 포옹은 상대를 자기 안으로 흡수하지 않습니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의 자유를 빼앗지 않고, 가까워졌다는 이유로 상대의 경계를 무너뜨리지 않으며, 하나가 되기를 원한다는 이유로 상대를 나와 똑같은 사람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포옹했던 팔은 다시 펼쳐져야 합니다. 그래야 너는 너로 남고 나는 나로 남으며, 서로 다른 두 존재가 사랑 안에서 가까워지면서도 각자의 고유함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랑은 다름을 제거하여 하나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면서도 서로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신비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바로 그러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되 우리를 소유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부르시되 강제로 끌고 가지 않으시며, 당신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시면서도 우리가 자유롭게 응답할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전능함으로 우리를 굴복시키지 않으시고, 당신의 힘으로 우리의 자유를 짓밟지 않으시며, 오히려 우리를 위하여 작아지고 약해지고 가난해지십니다. 말씀 한마디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분이 한 여인의 태중에 작은 생명으로 머무시고,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분이 여관의 방 한 칸조차 얻지 못한 채 구유에 누우시며, 생명의 주인이신 분이 사람들의 손에 붙잡혀 옷 벗김을 당하고 십자가 위에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채 매달리십니다.

 

십자가는 하느님의 가난이 가장 깊이 드러난 자리입니다. 그곳에서 하느님께서는 아무것도 움켜쥐지 않으시고, 아무것도 자신을 위하여 남겨 두지 않으시며, 당신의 몸과 피와 숨과 마지막 말씀까지 모두 내어주십니다. 십자가 위의 예수님은 무엇을 얻기 위하여 죽으신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에게 당신 자신을 남김없이 주기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분의 가난은 빈곤이 아니라 사랑의 흘러넘침이며, 그분의 무력함은 패배가 아니라 타인의 자유를 끝까지 존중하는 전능한 사랑의 모습입니다.

 

세상의 힘은 상대를 움직이고 굴복시키는 능력으로 드러나지만, 하느님의 힘은 자신을 내어주고 기다리며 끝까지 사랑하는 능력으로 드러납니다. 세상의 권력은 높은 자리에 올라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 하지만, 하느님의 전능은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사랑이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내어주시면서도 소멸되지 않으시고, 약함 안으로 들어가시면서도 사랑을 잃지 않으시며, 거절당하고 상처받으시면서도 다시 사랑하는 일을 멈추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가난은 하느님 사랑의 무력함이 아니라, 세상의 어떤 폭력도 파괴할 수 없는 사랑의 강함입니다.

 

십자가 위에 펼쳐진 두 팔은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영원한 포옹입니다. 그 팔은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실패한 사람도 죄인도 상처 입은 사람도 멀리 서 있는 사람도 모두 불러들입니다. 그러나 그 포옹은 강제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저 바라보시며 기다리십니다. 마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기처럼, 마치 거절당할 가능성까지 받아들인 연인처럼, 당신을 받아들일 것인지 말 것인지 우리의 자유에 맡기십니다. 하느님의 이 가난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힘으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설득하고 기다리며 곁에 머물고, 상대가 스스로 문을 열 때까지 존중하는 것임을 배웁니다. 가족과 공동체 안에서 누군가를 변화시키려는 조급함을 내려놓고,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도록 통제하려는 욕망을 버리며, 그 사람 안에서 하느님께서 일하실 자리를 남겨 둡니다.

 

가난한 사랑은 상대를 고치려 하기 전에 그의 아픔을 듣습니다. 충고하기 전에 곁에 앉고, 판단하기 전에 그가 걸어온 길을 헤아리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르치기 전에 그의 이름을 불러 줍니다. 사랑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지만, 누구도 혼자 고통받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가난은 해결책이 없는 자리에서도 함께 머무를 수 있는 능력입니다. 말로 위로할 수 없는 슬픔 앞에서 침묵으로 곁을 지키고, 죽어 가는 사람의 손을 잡으며, 되돌릴 수 없는 상실 앞에서 섣불리 하느님의 뜻을 설명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신비를 그대로 남겨 두면서도 떠나지 않는 포옹, 그것이 가난한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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