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8,1–11
사람들이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예수님 앞으로 끌고 옵니다.
그들은 묻는 척하지만 사실은 함정입니다.
“모세는 이런 여자를 돌로 치라 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말합니까?”
그들의 관심은 여인의 생명이 아니라
자기 정당함과 예수님을 넘어뜨리는 계산입니다.
예수님은 즉시 판결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몸을 굽혀 땅에 무엇인가를 쓰십니다.
소란 속에서 침묵이 생기고,
단죄의 군중 앞에 ‘멈춤’이 생깁니다.
오리게네스는
복음의 결정적 순간이
“돌을 던질 이유”를 찾는 데 있지 않고
자기 죄를 알아보는 빛이 켜지는 데 있다고 봅니다.
말씀은 타인을 겨냥한 무기가 아니라
먼저 내 마음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한 문장은
사람들의 손에서 돌을 떨어뜨립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져라.”
이 말은 죄를 가볍게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죄를 더 진지하게 다룹니다.
왜냐하면 죄를 ‘처벌’로만 해결하려는 마음을 멈추게 하고,
죄를 ‘회복’의 자리로 옮기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둘 떠나고
마침내 예수님과 여인만 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이제부터는 죄짓지 마라.”
자비는 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새 삶으로 돌려보내는 힘입니다.
영성 주간의 월요일, 우리는 배웁니다.
회복은 누군가를 돌로 치는 순간이 아니라,
내 손에서 돌이 떨어지는 순간 시작된다는 것을.
오리게네스의 눈으로 보면
이 복음은 이렇게 우리에게 말합니다.
“단죄를 내려놓을 때
말씀은 비로소 생명이 된다.”
주님,
제가 남을 향해 쥐고 있던 돌을 내려놓게 하소서.
제 안의 어둠을 먼저 보게 하시고
단죄 대신 자비의 길을 선택하게 하소서.
오늘도 저를 새 삶으로 보내시는
당신의 용서를 믿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