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은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고,
주님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드러난 적이 없었다.”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서약식에 자주 듣는 오늘 사무엘기를 묵상하면서
사무엘은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였다는 얘기와
주님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드러난 적이 없었다는 말이 특히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처음 사무엘에게 들려왔을 때 그는 몇 살 소년이었을까요?
몇 살 소년이었기에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였을까요?
저는 집안 분위기로 보아 아주 일찍 하느님 얘기를 들었을 것이고,
그러니 하느님 존재를 막연하게나마 들어 알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는 하느님 존재를 적극 긍정도 적극 부정도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저 계신가보다 하며 지냈던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사무엘이 하느님을 아직 알지 못했다는 것은
하느님에 관해 아무 얘기도 듣지 못해 전혀 알지 못했다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어머니 한나에게 들어 알았을 것이고,
사제인 스승 엘리에게 들어서 알았을 테지만
사무엘이 아직 하느님을 알지 못했다는 것은 다른 뜻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직 하느님을 알지 못한 그가 이제 알아야 한다면
그 안다는 것은 무슨 뜻이고 무엇을 알아야 하는 것일까요?
하느님을 잘 알아야 한다는 뜻일까요?
하느님을 전부 다 알아야 하고 속속들이 알아야 한다는 뜻일까요?
그것은 불가능하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교만일 것입니다.
하느님이 아니고서는 하느님을 전부 다 알고 속속들이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무엘기의 이어지는 말의 뜻을 잘 알아야 들어야 합니다.
사무엘기는 사무엘이 아직 주님을 알지 못했다고 한 다음
주님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드러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말을 덧붙입니다.
하느님께 대해 들은 말은 있고 들어 알고는 있지만
하느님 말씀을 직접 들은 적은 아직 없었다는 뜻입니다.
얘기를 들어서 아는 것은 아직 내가 아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 말씀을 내가 직접 들어서 알아야
다시 말해서 체험적으로 알아야 아는 것입니다.
이런 뜻에서 하느님을 제가 어렴풋이 안 것은 사춘기를 겪은 20세 무렵이고,
체험적으로 하느님을 안 것은 군 생활을 통해 제 사제 성소를 포기하고
절망 상태에서 지내다가 복음을 통해 하느님 말씀을 듣고 난 25세 무렵입니다.
이렇게 체험적으로 하느님을 알게 되기 전의 저는 절망 상태였습니다.
살아 계신 하느님을 체험하기 전에는 제가 살아 있어도 산 것이 아니었기에
하느님을 알고자 그리니까 하느님을 체험하고자 별놈의 짓을 다 했습니다.
하느님을 모르는 것이 절망이었기에
하느님을 아는 것이 절실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절망이 저를 절실하게 하였기에
한 번만이라도 하느님 말씀을 듣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으며,
그 간절함을 주님께서 보시고 복음을 통해 말씀을 내리신 것입니다.
그 후에도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아 하느님 말씀 듣지 못했던 적이 있지만
이제는 하느님 말씀 귀가 어둡긴 해도 사무엘과 같은 자세는 되어있습니다.
“주님 말씀하소서. 당신 종이 듣나이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